행동주의 출현 배경

행동주의는 구성주의와 기능주의의 연구대상과 방법에 극단적으로 반발한 심리학파다.
행동주의는 크게 왓슨식의 행동주의(Watsonism Behaviorism)와 신행동주의(Neo0Behaviorism)로 구분되는데, 행동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은 다양하다.

왓슨이 행동주의를 주창한 때인 1913년 이전에 이미 심리학은 행동의 학문이라는 주장을 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멀리는 유물론자들이었고, 조금 가깝게는 실증주의자들이었으며, 더 가깝게는 미국의 실용주의와 기능주의였다. 또한 독일의 객관주의적 동물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 쏜다이크에 동물 실험 등이 행동을 연구대상으로 이루어진 흐름이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후일 행동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사상적 배경은 진화론과 경험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행동주의 만큼 진화론과 경험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심리학파도 드물다.

진화론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으며, 인간 신체의 구조와 신경계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또한 경험론은 인간의 행동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상이 되어 주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백지상태(tabura rasa)라는 경험주의 철학자 로크의 사상은 왓슨에 의해 전적으로 수용되었다.
왓슨은 초기에는 어느 정도 인간의 본성을 인정했으나 후기에는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을 취했다.

 

 

행동주의의 주창자

왓슨(Watson, 1878-1958)을 행동주의 창시자로 칭하기에는 앞서 행동주의의 출현 배경에서 살펴본 사실 때문에 다소 무리가 있다. 이미 행동을 강조하는 심리학의 흐름과 학자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심리학의 철학적 흐름과 연구들 때문에 분트(Wundt)를 심리학의 창시자로 칭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그래서 왓슨을 행동주의의 창시자라고 하기보다는 행동주의의 주창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왓슨은 퍼어먼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원에서 엔젤과 듀이의 지도를 받아 1903년에 학위를 받았다. 왓슨은 스스로 흄, 로크, 하아틀리와 같은 경험론자에게서는 영향을 받았으나, 칸트, 듀이와 같은 이성주의자에게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왓슨은 1912년 카텔(Cattel)의 초청으로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연하고 다음 해인 1913년에 발표한 논문 『행동주의자가 보는 심리학(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을 계기로 행동주의를 처음으로 선언했다.

행동주의는 그 출발이 다른 학파와는 다르다.
보통 학파라고 하면 공통의 학문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학풍을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왓슨의 행동주의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행동주의는 왓슨 1인에 의해 하나의 주의(-ism)로 출발했다.
그래서 왓슨의 행동주의를 왓슨식의 행동주의(Watsonism Behaviorism) 또는 일인학파(一人學派 : One man School)라고 하여 다른 행동주의와 구분한다. 그 이유는 왓슨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주의를 주장하는 심리학자가 행동주의들 내에서도 왓슨 이후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극단적 행동주의

왓슨은 구성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로써 행동주의를 주장하다보니 인간의 의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단지 행동만을 연구해야 하며, 그러한 행동을 요소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왓슨의 행동주의를 요소론적 행동주의라고도 한다.

왓슨의 행동주의는 1903년 『행동주의가 보는 심리학』, 1913년 행동주의 선언 발표, 1914년 콜럼비아 대학에서의 강의 내용을 묶어 행동주의 입장에서 동물심리학을 논술한 최초의 저서 『행동:비교심리학 서설』, 1919년 행동주의의 심리를 인간에게 적용한 『행동주의 입장에서의 심리학』, 1930년 『행동주의』 등의 저서를 통해 그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왓슨 행동주의의 요점은,
심리학은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실험적인 자연과학의 일부분이고, 심리학의 목적은 행동의 예언(prediction)과 통제(control)라는 것이다.
비록 인간의 행동은 고등하고 복잡할지라도 동물의 행동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으며, 심리학은 의식을 파기하고 심적 상태, 마음, 내용, 심상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것들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왓슨은 구성주의와 기능주의 모두를 전적으로 거부했다.

행동의 단위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그래서 왓슨의 행동주의는 자극 - 반응 심리학이다.
행동은 복합체이며, 그 궁극적 요소는 반사(reflex)다. 왓슨은 본능과 습관이 요소적인 반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1920년 이후 왓슨은 극단적인 환경 결정론을 취하면서 본능같은 유전적인 측면을 전적으로 부정했다.

 


왓슨의 공헌과 아이 실험

왓슨은 그의 부인 레이너(Rayner, 1920)와 함께 생득적인 정서적 반사가 어떻게 해서 중립적인 자극에 조건화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앨버트(Albert)라는 11개월된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앨버트는 처음에 쥐를 장난감처럼 어루만지면서 전혀 공포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쥐를 만질 때 뒤에서 망치로 철사 막대기를 두들겨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앨버트는 굉음에 놀라 풀쩍 뛰었다가 앞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앨버트는 다시 쥐를 만지려고 했다.
이때 또 다시 굉음을 내었더니 앨버트는 깜짝 놀라며 울기 시작했다. 앨버트가 너무 동요되지 않도록 1주일간 실험을 중단한 다음 앨버트에게 다시 쥐를 제사하였더니 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차례 더 쥐와 소리를 짝지웠더니 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차례 더 쥐와 소리를 짝지웠더니 앨버트는 쥐에 대해 처음과 달리 강한 공포를 느꼈다.
앨버트의 공포는 쥐와 비슷한 털을 가진 다람쥐, 개, 모피, 외투, 목화, 산타크로스의 수염에도 일반화되었다.

왓슨과 레이어의 실험에서 커다란 소리는 무조건자극(UCS)이며,
이 자극은 무조건 공포를 유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무조건반응(UCR)이다.
처음의 쥐는 공포를 유발시키지 않는 중성자극이었으나 무조건자극과 결합하면서 공포를 유발시키는 조건자극(CS)이 되었다.
나중에 쥐에 의해 유발되는 공포는 처음의 무조건반응과 구분해 조건반응(CR)이라고 한다.

이러한 원리로 왓슨은 정상적인 아이를 맡기면 부모가 원하는 성격, 직업,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공언을 하기도 했다.

 


이혼으로 끝장 난 일인학파

왓슨이 주장한 극단적 행동주의는 왓슨 이후의 행동주의자들이나 다른 심리학자들에 의해 기본 원리는 받아들여졌지만, 왓슨식의 극단적 행동주의는 단명했다.

왓슨의 행동주의는 1913년 행동주의 선언 이후 왓슨에 의해 주도되어 그의 연구와 저술, 연설을 통해 하나의 학파를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왓슨의 행동주의자로서의 생애와 전문 심리학자로서의 생애는 1920년 이혼으로 끝장 난 결혼 생활을 계기로 존스 홉킨스 대학을 떠났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그의 사상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후 왓슨은 앨버트 실험을 같이 한 레이너를 만나 재혼을 하고, 광고 회사에 들어가 전문잡지가 아닌 일반잡지에 글을 싣고 강연도 했다. 연구결과를 1930년 『행동주의』에 발표하긴 했지만, 그의 극단적 행동주의는 더 이상 행동주의에 존재하지 않았다.

왓슨은 1936년 심리학이 이전의 신화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심리학을 추구할 때, 중세의 르네상스보다 더 큰 과학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생리학, 동물학, 정신의학, 생화학과 함께 발전할 행동주의의 밝은 미래를 기약했다.

이러한 그의 믿음과는 달리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심리적,사회적,생물학적인 측면을 포함시키는 신행동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왓슨의 행동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말초주의 심리학

왓슨의 행동주의가 행동을 강조했던 왓슨 이전의 학자들보다 더 큰 관심을 끌며 학파로 발전했던 이유는 순전히 왓슨의 인간적 특성 때문이다.
그는 심리학이 행동을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극단적으로 집약해서 표현했고, 의식과 내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이론을 간단 명료하게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결국 왓슨 행동주의의 힘은 이전의 심리학에 대한 강하고 대담한 부정의 결과에서 나왔던 것이다. 왓슨 행동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리학은 의식의 존재와 기능을 무시하고 순전히 행동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의식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행동주의적 접근을 검은상자(black box)접근이라고 부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진화론에 근거를 둔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심리학을 쥐심리학(rat psychology)이라고 혹평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인간의 행동은 자극과 반응으로 이루어지며 행동의 궁극적 요소는 반사(reflex)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심리학을 요소론적 행동주의라고 한다. 자극은 감각기관의 작용이며 반응은 근육 운동과 선의 분비이기 때문에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신경계통이 아니라 근육과 선과 같은 말초기관이다. 말초기관을 강조하는 왓슨의 심리학을 그래서 말초주의(Peripheralism)심리학 이라고도 한다.

넷째, 생리학은 소화와 순환과 같은 부분적인 면을 다루지만 왓슨행동주의는 작은 행동일지라도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전체적 반응을 다룬다.

 


목적과 수단의 전도

왓슨의 심리학은 극단적 행동주의, 요소론적 행동주의, 말초주의, 수동적 인간관, 기계론적 인간관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과 주장들은 행동주의를 하나의 학파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왓슨식의 행동주의가 쇠퇴하는 계기도 되었다. 왓슨 행동주의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을 지나치게 행동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뿐만 아니라 정신세계,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둘째, 인간을 환경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을 능동적으로 통제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셋째, 인간 행동을 지나치게 요소적으로 분석하려고 했다.
구성주의의 요소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오히려 인간의 행동을 근육의 운동과 내분비선의 흐름과 같은 요소로 분석하려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넷째, 인간을 지나치게 기계에 비유해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와 같이 프로그램 되어진 존재가 아니며, 입력되는 자극에 따라 반응이 일어나는 존재도 아니다.

다섯째, 인간을 지나치게 자극 - 반응의 존재로 보았다.
이 또한 기계론적 인간관의 영향인데, 인간은 모든 자극을 그대로 다 표현하지도 않고 유기체 내에서 자극이 변형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여섯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강조하다보니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의 목적보다 과학적 방법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이는 곧 심리학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버린 것이다.

 

Posted by 삶은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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