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질’ 추락…불신·무기력 심해졌다
한겨레|기사입력 2008-01-16 20:57 
 
[한겨레] 이재열 교수 “사회 응집성·시민 역동성 키울 사회자본 투자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정적 변화로는 청년실업 증가, 비정규직 양산, 자살율 급증 등이 떠오른다. 연고주의와 권위주의의 상대적 약화, 여성의 활발한 사회적 진출 등은 그 반대 양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봤을때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최근 출간된 <외환위기 10년, 한국사회 얼마나 달라졌나>(서울대출판부·정운찬 조흥식 편)에 수록한 논문 <한국사회의 질(social quality)의 변화와 전망>에서 이 문제를 검토했다.

그는 지난 변화를 가늠하는 개념으로 ‘사회의 질’을 끌어들였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 학자들이 일상의 삶의 질을 포착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으로 매우 가치부하적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한 사회의 발전 정도는 정치나 경제든 단선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졌기 때문에 경제적 차원의 ‘선진화’라는 개념보다는 사회의 품격과 포용성, 상호신뢰 그리고 문화적 매력까지 포괄할 수 있는 ‘사회의 질’ 개념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질’을 구성하는 영역으로는 ‘사회경제적 안전성(Security)’과 ‘사회적 응집성(Cohesion)’ ‘사회적 포용성(Inclusion)’ ‘사회적 역능성(Empowerment)’이 있다. 각 영역의 발전 정도에 따라 안전사회와 위험사회(안전성 영역), 신뢰사회와 불신사회(응집성), 포용사회와 차별사회(포용성), 활력사회와 무기력사회(역능성)로 나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분류에 맞춰 지난 10년 한국 사회의 각종 지표를 대입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이렇다. 긍·부정적 방향의 변화는 교차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총체적인 불신의 심화와 계층 간 포용성의 감소, 사회적 배제의 심화, 그리고 구조적 역능성의 감소, 이로 인한 무기력의 증가 현상이다.” 4가지 영역 모두에서 개선보다는 부정적 변화가 더 두드러지는 셈이다.

사회경제적 안전성을 보면, 소득수준의 향상과 교육 기획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늘면서 사회경제적 위험에 노출된 인구의 비중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응집성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관용성이 증가하기는 했으나 일반적 신뢰는 줄었다. 주요 기관에 대한 불신은 더욱 늘어나고 부패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사회적 포용성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낮아졌다는 게 그의 평가다. 성차별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계층 간 배제와 차별은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또 역능성에 대해선, 자신의 능력 계발 의지는 증가하고 있으나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미래에 대한 낙관과 이상주의 감소로 무기력한 사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취약한 사회의 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선진화와 경제적 성장의 발목을 잡는 단계에 도달했다.” 고도성장기에는 ‘경제의 가치’, 민주화 시기에는 ‘정치의 가치’가 주된 논의의 핵심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사회적인 것’의 가치가 주목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방은 사회에 대한 미래지향적 투자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물적 자본뿐 아니라 사회자본에 투자해야 하며, 이런 투자를 통해 사회적 응집성과 포용성, 시민들의 역능성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성에 못지않은 정당성을 갖춘 정책화 과정, 결과 못지않은 과정에 대한 관심, 성장 못지않은 배분과 배려, 개개인의 참여 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고방식을 소중히 여길 때 발전의 병목지점도 넘을 수 있으며 실질적인 사회의 품격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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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교수 “국가는 공정한 심판, 시장은 안전장치 구축”

보완관계 맺는 경제구조 제안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같은 책에 실은 글 <한국사회의 도전과 과제-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에서 국가와 시장이 보완 관계를 맺는 경제구조의 개혁을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그는 고도성장기에는 국가 중심, 외환위기 이후에는 단기 수익 위주의 시장 중심 패러다임이었다면서, 국가와 시장이 본연의 기능을 다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패러다임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국가가 시장을 감시하는 공정한 심판자의 구실을 잘 감당해야 하며 △‘시장’제도의 하부구조로서 ‘사회적 안전장치의 구축’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다면 “경쟁은 더 이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약탈적 기제로 돌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새 패러다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범사회적 신뢰’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확보되면 사회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만들기가 한층 쉬워지며 이를 토대로 지구화의 부작용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신뢰 축적 방안으로 △지도자의 비전과 능력, 인격 △규칙 위반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 등을 제시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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