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론 Vs. 현실 Ⅱ ― 이론의 수입과 토착화 문제

개념들은 현상을 일반화 하는 경향이 있어서, 차이보다는 유사성 혹은 동일성에 집중한다. 개념은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탈락시키고, 차이들을 유사성에 의해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즉, 현상은 보이는 그대로 이해될 수 없고, 늘 시·공간적으로 분절되고 계열화된 형태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체적 현상들의 일반화를 통해 구축되는 개념과 이론은 일단 형성되면, 그것들이 가지는 현실설명력이라는 효용성으로 인해 그러한 개념과 이론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탈맥락화된 이론의 수입과 적용.

탈맥락화되었다는 것은 이론이 형성된 역사, 사회, 정치, 문화적 토양 등을 고려하지 않고, 추상화된 이론 자체만을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성의 수준이 높을수록, 보편성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편성을 갖는 이론은 상이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구조적 유사성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이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탈맥락화된 이론의 수입자체가 아니라, 수입한 이론을 연구자의 현실에 맞게 토착화시키는 과정이다.

새로운 이론을 수입하여 연구하는 것이, 마치 기업이 신상품을 내놓는 것처럼, 지식인 사회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연구자가 대중들과 괴리된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찬 글들을 생산해 내는 것은 이론이 가지는 현실설명력을 통해서 연구자가 딛고 있는 현실들을 다루기보다는, 이론 자체를 권력화하는 것이며, 이론에 걸맞은 현상들만을 발굴해내거나, 억지로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2. 연구자의 위치와 개입

이론은 현실 설명력에 따라서 취사선택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가 살아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이론도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지만, 연구 문제 즉, 연구자가 다룰 현상은 연구자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만 나타난다. 특히 문화연구에 있어서 ‘현장성’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자가 속해 있는 현실의 상황자체가 연구주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세부사항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가 연구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어, 문화적 관습 등을 몸에 익히고 있는 현지 연구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연구영역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이 자라온 사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결국 연구자가 자신의 사회에 대해서 개입하게 됨을 의미한다. 학문 영역에서 만들어 내는 지식들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학문체계 안에서 담론투쟁을 벌이게 된다. 지식은 서열화되며, 정치화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된다. 지식은 기존 사회질서의 유지 기능을 하거나 반대로 그것에 대한 비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에는 사회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관심사가 아니었던 분야를 새로이 발굴해 냄으로써 사회적, 학문적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은 현실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결국, 연구주제와 연구방법에 관련된 문제이다. 어떤 연구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연구방법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서, 연구자가 생산한 지식이 사회적 이용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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