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rald Corey의 상담과 심리치료의 이론과 실제(Theory and Practice of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를 발췌하여 편집하여 요약 한 것

 

실존치료이론 

 

Victor Frankl(1905- )

 

   프랭클은 비엔나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1930년에 M.D를 그리고 1949년에 비엔나 대학에서 Ph.D를 받았다. 1928년에 그는 비엔나에 「the Youth Advisement Centers」를 세워 1938년까지 그것을 운영하였다. 그는 또 여러 군데의 임상실과 병원에서 일했다.

 

1942년에서 1945년까지 그는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다하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혔엇는데 이곳에서 그의 부모와 형제 그리고 부인이 죽었다. 1947년 이후 비엔나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후에 그는 캘리포니아 샌디애고에 있는 미국 국제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는 하버드, 스탠퍼드, 그리고 남부 신학대학 등에서 초청받았다.


나치의죽음의수용소에서 투옥되기 전에 실존적 접근법을 연구했지만 수용소의 경험들이 그의 관점을 확고히 해주었다. 수용소에서 그는 실존철학자들과 학자들에 의해 표현된 진리를 관찰했고 개인적으로 체험했다. 그런 진리 중의 하나로 사랑은 궁극적이며 인간이 존중해야 할 가장 높은 목표이다. 그는 인간의 구제는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였다. 일상의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수용소에서 그가 경험에 의해 확신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자유와 마음의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체험으로 배웠다. 그 한가지는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자유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 자신만의 길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은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는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가치(사랑이라든가 과업의 성취와 같은)를 추구함으로써, 그리고 고통을 체험함으로써 의미를 배울 수 있다.


그의 연구는 세계 각국에 번역되었고 실존치료의 발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의 탁월한 저서<<의미에의 추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실존적 접근법에는 어떤 하나의 이론설립자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양한 운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프랭클을 택한 이유는 삶의 비극에 의해 그의 이론이 검증되었다는 극적인 것 때문이다.

 

1. 서 문

  실존치료는 치료의 실제에서 볼 때 지적인 접근법이며 치료자가 갖는 철학이다. 이것은 분리된 하나의 학파나 특수 기법을 가진 세련된 모형이 아니다. 이 장에서는 실존치료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실존적 개념과 논제들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실존적 접근법은 서로 다른 두 기법 즉 정신분석치료와 행동주의치료에 대한 반동에서 발달하였다. 실존치료는 인간본질의 결정론적 ·생산적·기계론적 관점에 반대한다. 이것은 인간은 자유롭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반면에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무의식적인 힘, 비합리적인 동기 그리고 과거의 사건에 의해 인가의 자유가 제한을 받고 있다고 본다. 실존적 관점은 성장에 기초한 모형이며 병보다는 건강을 개념화하고 있다.

 

1) 철학적 배경
  실존치료에는 많은 지류가 있다. 이 치료법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정립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의주요 성향에서 도출된 것으로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유럽의다양한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정신의학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고독과 소외와 무의미함 같은 삶의딜레마에 직면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의 기법을 발달시키는 대신에 인간의 깊은 경험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May & Yalom, 1984).


  실존적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은 19세기 초엽까지 되돌아가서 여러 철학자와 작가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실종치료의 철학적 불꽃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와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니체(Nietzsche), 하이데거(Heidegger), 사르트르(Sartre), 그리고 부버(Buber)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1)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이 위대한 러시아의 문호는 인간은 가장 쾌락을 준다고 믿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는 정교한 신념을 깨뜨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심하다고 자처하는 남자와 이 세상의 성공적인 어떤 사람보다 양심적이라고 믿는 남자는 일시적인 기분에 따라 행동하거나 단지 쾌락보다 선행하는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논쟁하였다. 우리는 "가장 이익이 되는 것"에 대항해서 결정하거나 행동하기도 한다. 양심은 고통스럽고 우리를 망설이게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에 위대한 자유를 준다.

 

(2) 키에르케고르(1812-1855)
  덴마크의 학자인 그는 불안(angst)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불안이란 덴마크어와 독일어로서 영어의 두려움(dread)와 불안(anxiety)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불안의 경험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몽유병환자처럼 삶을 살다 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다수 특히 청소년은 극도의 불안에 의해 참된 삶을 각성한다. 삶은 연속적인 우연이며 죽음의 확실성 외에는 어떤 보장도 없다. 삶은 결코 편안한 상태가 아니지만 인간조건에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은 던져진(projected)존재이다.

 

(3) 니체(1844-1900)
  독일의 철학자인 그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다라는 고대의 정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증명하였다. 우리는 합리적인 지능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의지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사회는 도덕, 종교, 정치 등을 주입시킴으로써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만약 양떼처럼 "집단도덕성"(herd morality)을 묵인한다면 우리는 단지 어리석은 군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의지의 고삐를 풀어 놓음으로써 우리를 해방시킨다면 우리는 창조성과 공성을 가진 우리의 잠재력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 즉 "초인"(superman)이 되는 길이다.

 

(4) 하이데거(1889-1976)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니체에 의해 극적으로 표현된 인간존재의 주관적 경험은 20세기에 들어 현상학이라는 경험적 연구방법으로 발달하였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우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매일매일을 피상적인 대화와 타성으로 채우기 때문에 나날을 낭비하면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포함한 기분과 느낌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신뢰로운 삶을 살아가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기대에 좇아 신뢰롭지 못하게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모호한 느낌을 명확히 인식한다면 우리는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하게 될 것이다.

 

(5) 사르트르(1905-1980)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험스런 저항의 시기의 영향으로 인해 과거의 실존주의자들보다 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무(nothingness)라는 시존적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에 우리가 하려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준다. 그러나 이 자유는 직면하기 어려워 "나는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어. 왜냐하면 잘못된 궤도에서 태어났으니까"라든가 "나는 내 과거의 조건 때문에 변화할 수 없어"라는 식의 변명을 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이 변명들을 "잘못된 신념"(bad faith)이라고 불렀다. 내 과거가 어땠건 나는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위임될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 다른 측면인 책임성이다.

 

(6) 부버(1878-1965)
  독일을 떠나 이스라엘에서 산 이 사상가는 다른 실존주의 학자들보다 덜 개인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그는 인간을 중간적 존재(etweenness)라고 보았다. 즉 바로 나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남이기도 한 존재이다. "나"란 대리인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그것"도 되고 "당신"도 된다. 그러나 때로 나는 다른 사람을 단지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실수를 범한다. 이런 경우 나는 그/그녀를 교묘히 다루고, 나처럼 자발적인 존재로서의 그/그녀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서로의 역할이나 권위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로저스와의 유명한 대화에서 부버는 치료자와 결코 같은 보조로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논쟁하였다. 왜냐하면 치료자는 내담자를 돕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계가 충분히 성숙하면 우리는 "대화적인" 인간조건을 갖게 된다.

 

2) 세 명의 유럽의 실존적 정신의학자들
  빈스방거(Binswanger), 보스(Boss), 그리고 프랭클은 정신의학에 실존요법을 적용한 학자들이다. 비록 그들은 어떤 이념적인 응집력 있는 학파를 형성한 것은 아니지만 치료자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실존적인 이해를 통해 내담자의 주관적인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빈스방거와 보스는 하이데거의 생산적인 연구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의 사고에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개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보다 폭넓은 기초를 제고해 주었다. (May, 1958).

 

 빈스방거(1975)는 치료에서의 위기는 내담자를 위한 치료법의 선택에 있다고 보았다. 처음에 그는 정신분석이 정신병환자에게 빛을 주는 이론이라는 관점을 가졌었지만 차차 실존적 관점으로 옮아갔다. 이 관점은 그로 하여금 치료자로서의 경험과 행동에 그의 관점을 지나치게 부과하는 것과는 반대로 내담자의 행동의 의미와 직접적 경험 그리고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보스(1963)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깊이 영향을 받았었으나 후에 하이데거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치료자로서의 그의 주요관심사는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을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책 <<현존재분석과 정신분석(Daseinanalysis and Psyhoanalysis)>>에서 보여 준 것처럼 프로이드의 방법과 하이데거의 개념을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프랭클(1963, 1965, 1969, 1978)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언급한 것을 가지고 실존분석(로고테라피)이라는 그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치료관점이 진공에서 발달된 것은 아니며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프로이드의 제자로서 정신분석적인 정신의학자로 출발하였다. 후에 그는 실존철학자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그 자신의 실존적 철학과 심리치료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를 참고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나의 고통이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1963)

 

  프랭클은 프로이드의 결정론적인 개념에 반대하여 자유, 책임성, 삶의 의미 그리고 가치추구와 같은 기본 개념으로 심리치료의 이론과 시제를 정립하였다. 그는 "의미를 통한 치료"를 뜻하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발달시켰다. 그가 발전시킨 주제는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이다. 프랭클에 의하면 현대인은 가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채 그의 삶을 산다고 한다.우리 시대의 비극은 일상사에서 그리 바쁘지 않을 때 경험하는 무의미함과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이다. 치료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사람 속에서 살고, 고통을 받고, 사랑하면서 그런 것들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도록 도전하는 것이다.(Frankl, 1965).

 

3) 미국에서의 실존치료
  미국에서 실존적 접근법을 주장하는 가장 탁월한 대변자는 메이(May)와 얄롬(Yalom)인데 이들의 사상이 이 장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나라에 실존치료를 최초로 소개한 것은 "실존 :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새로운 영역"(May, Angel & Ellenberger, 1958)이었다.
 

 메이는 유럽의 실존주의를 미국의 심리치료의 이론과 실제의 주류에 옮겨 놓은 심리학자이다. 그는 시존적 관점을 발달시킬 때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들의 관점을 많이 인용하였다. 특히 그는 현대의 실존적 사고의 기수인 하이데거를 신뢰하였는데 그는 실존적 정신의학자들에게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깊고 폭넓은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1958). 메이는 또한 빈스방거와 보스가 실존치료에 기여한 점을 인식하였으며 특히 내담자를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개인적 세계를 가진 존재로 보는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저술은 치료의 주관적 영역을 강조하는 이런 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 운동의 역사적 개관을 보다 세부적으로 아고 싶은 사람은 메이(1958)와 상의할 수 있다.
 

 보다 최근에 얄롬의 포괄적인 교과서인 <<실존적 심리치료>>(1980)는 획기적인 업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여러 소설가와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채에서 앞서 논의된 철학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주제를 도출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 창조성, 무의미성, 죽음
·키에르케고르로부터 : 창조적 불안, 절망, 두려움과 죽은, 죄의식, 무.
·니체로부터 : 죽음, 자사, 의지
·하이데거로부터 : 신뢰로운 존재, 돌봄, 죽은, 죄의식, 개인적 책임성, 고립.
·사르트르로부터 : 무의미, 책임성, 선택
·부버로부터 : 인간관계, 치료에서의 나 /당신의 관계,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

 

  그러나 얄롬은 빈스방거나 보스로부터는 별로 인용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술이 너무 심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생각이 미국의 실용주의적인 치료의 전통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얄롬은 프랭클을 그의 저술과 임상에 영향을 준 가장 뛰어난 실용주의적 사고가라고 생각하였다.


  심리학은 오랜 동안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경험적 접근법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북미의 많은 학자들은 조작적 정의, 검증할 수 있는 가설, 경험적 데이터만이 인간행동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데 타당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전통 속에서 엄격한 통계적 수치를 갖추지 않은 철학적 접근법은 별로 주의를 끌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실존치료는 학문집단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얄롬은 실존분석을 "보다 좋은 학문적인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 집없는 방랑자"(1980)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는 경험이 많은 숙련된 치료자들은 그들의 이론적 태도에 관계없이 실존적 개념과 통찰을 치료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실존분석에 대한 방어에서 얄롬은 실존분석을 "이것은 역동적 접근법이다......개인의 실존에 관심을 두는"(1980)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죽음, 자유, 고립, 그리고 무의미성은 실존적 정신역동성의 핵심을 이룬다고 한다.

 

 2, 주요 개념들

 1) 인간본성에 대한 관점
  심리치료에서 실존치료의 결정적 중요성은 이것이 기법으로 치료를 하려는 경향에 대한 반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존재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치료의 기초를 두는 치료이다. 실존치료는 인간을 존중하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 또한 인간행동의 새론운 면을 탐색하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새로운 방법을 탐색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정에 기초된 치료로서 여러 가지 접근법을 사용한다.


  인간본질에 대한 실존적 관점은 우리의 실존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영원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기초해 왔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설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실존을 인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우리가 제기하는 특수한 질문들이 각 발달단계에 따라 다양하지만 기본 주제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있는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존재했던 것도 없고 주어진 의미나 부과된 의미도 없으며 이 세상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Fischer & Fischer, 1983).


  실존적 접근법에 의하면 인간조건의 기본 영역은 즉 ① 자기인식의 능력, ② 자유와 책임,  ③ 자신의 정체감의 발견과 다른 사람과의 의미있는 관계의 정립 ④ 의미·목적·가치·목표의 추구, ⑤ 삶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⑥ 죽음과 무의식등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 전제 1 : 자기인식의 능력
   인간존재로서 우리는 자기인식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반성할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다. 인식이 넓어질수록 자유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인식을 넓히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사는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인간실존의 핵심이 되는 인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유한하며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 행동을 취하는 것은 하나의 결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운명을 부분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


·의미는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추구한 산물이며 독특한 목적을 창조하는 것이다.


·실존적 불안은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자유를 가졌다는 자각이며 삶의 본질적 부분이다. 유용한 선택에 대한 자각이 늘수록 이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는다.


·우리는 고독과 무의미와 공허감, 죄의식 그리고 고립감을 경험하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혼자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와 관계할 기회를 갖고 있다.

 

3) 전제 2 : 자유와 책임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우므로 삶을 이끌어 갈 책임을 수락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피하려 할 것이다. 사르트르(1971)가 말했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며, 실존한다는 것은 이같은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관여"(commitment)라고 했는데 실존적 죄의식은 관여를 회피하거나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선택한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We are our choices)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에서 자유라는 것과 인간존재는 그 의미가 같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유롭도록 운명지워진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와 생활 그리고 실패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갖고 있다. 자유와 책임은 병행한다.이런 관념을 언급하면서 러셀(1978)은 책임의  정의는" 작자"의 개념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과 삶의 상황과 문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삶의 제작자이다. 다른 삼을 계속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수용하지 않는 내담자는 치료에서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책임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변화의 기본조건이다.(Yalom, 1980).


  프랭클(1978)도 역시 자유와 책임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the Statue of Liberty on the East Coast"는 "the Statue of Responsibility on the West Coast"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익살스럽게 시사하였다. 프랭클의 기본전제는 자유는 어떤 제한에 의해 묶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그런 제한에 저항한다. 궁극적으로 이들 조건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4) 전제 3 : 정체감의 추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람은 그들의 고유성과 중심성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관계를 갖고 싶어한다. 우리 각자는 자기를 발견하려 한다. 즉 자기의 정체감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것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며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주어야 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많은 실존작가들이 고독, 뿌리가 뽑혀 나간 것같은 허탈감, 소외 등을 논의하는데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 결과이다. 이런 실패는 산업화와 도시화 사회에서 개인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고독에서 도피하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개인은 고독한 군중 속에서 타자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Riesman, Reuel & Glazer, 1950). 내적 공허감과 텅빈 느낌, 존재에 대한 자기인식의 결여의 결과로 개인은 익명의 군중 속으로 자신을 가라앉히려고 한다.
 

 우리의 대부분이 겪는 고통은 외계의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지시와 대답과 가치, 신념을 추구하는 데 있다.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자신을 찾으려는 믿음이나 삶의 길에서 대답을 찾으려는 믿음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됨으로서 우리를 팔아버린다. 우리의 존재는 그들의 존재에 뿌리를 두게 되므로 우리는 더욱 자신에게 낯설게된다.

 

(1)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
  우리의 존재의 핵심을 발견하거나 내면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Tillich, 1952). 우리는 존재의 내부 깊숙이 있는 핵심을 발견하고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내담자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가 자신에게 핵심이 없고 자기가 없으며 실체감이 없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대하는 것을 반영하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담자는 "내 두려움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게는 정말 아무것도 없으며 자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빈 조개껍데기, 내부가 텅빈 공허, 그리고 만약 나의 가면을 벗긴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할 것이다.


  실존적 치료자들은 내담자들에게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의 총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지 또는 그저 단지 부모의 투사물이나 대체물로 느끼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느끼는가? 이런 식으로 영원히 머물러야 될 운명인가? 출구가 있는가? 그들은 만약 자신이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자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일단 내담자가 이 두려움을 인식할 용기를 보이면 그것을 언어화하고 치료자와 공유하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바깥에서 살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중심으로부터 길을 탐색하도록 이끄는 것이 치료의 시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외로움의 경험
  실존철학자들은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한 부분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신을 들여다 보고 고독감과 분리감을 느껴 보는 경험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분리의 감각은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의존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 할 때 생겨난다. 즉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감을 부여해야 하며 어떻게 상아야 하는 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혼자일 때 스스로 견뎌낼 수 없다면 어떻게 타인들에게 친구가 되어 누군가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과 어떤 견고한 관계를 갖기 전에 먼저 자신과 견고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곁에 서기 전에 먼저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홀로인 동시에 다른 사람과도 관계되어 있다는 명제는 본질적으로 역설이다. 우리가 인간조건을 고칠 수 있다든가 그것이 고쳐져야 한다든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다.

 

(3) 관계의 경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지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의 존재가 우리의 세계에 중요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혼자 설 수 있을 때, 자신의 힘으로 깊숙이 침잠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의 내부에 자리를 잡으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개인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는 기생적이며 공생적인 관계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치료의 기능의 하나는 내담자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증적이고 의존적인 애착과, 치료자와 내담자 양쪽 모두가 고양되는 치료관계와를 구별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그들의 관계에서 무엇을 얻는지, 친숙한 접촉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동등한 관계를 어떻게 방해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치료적이고 건강하며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는지 검토하도록 내담자에게 촉구할 수 있다.

 

5) 전제 4 : 의미의 추구
  인간의 특성 중 가장 뚜렷한 것의 하나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삶의 목적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미와 개인적 주체성을 추구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치료자와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갈등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나의 인생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의미의 근원은 무엇인가?"와 같은 실존적 문제로 집약될 것이다.


  실존치료는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담자가 자신의 인생의 의미에 도전하도록 돕는 개념적 체계를 제공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의 방향을 좋아하는가? 현재의 당신과 형성되어 가고 있는 당신에 대해 만족하는가? 이상적 자아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가? 만약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면 분명한 해답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1) 인습적인 가치관을 버리는 문제
  치료상의 문제들 중의 하나는 대체시킬 다른 절절한 가치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전통적인 가치관, 자기에게 부과된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다. 내담자가 실제로 도전받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면화 할 수 도 없었던 가치관을 버리고 이제 공허해 한다면 치료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담자는 자신을 "키"없는 배와 같다고 느끼면서 자신의 새로운 측면에 적합한 새로운 지침과 가치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것들 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치료과정에서의 과업은 아마도 내담자의 존재방식과 일치하는 생활방식에 기초한 가치체계를 창조하도록 내담자를 돕는 데 있을 것이다.


  치료자의 역할은 의미있는 삶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치체계를 내담자 스스로 그의 내부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담자는 확실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며 불안스러워할 것이다. 내담자에 대한 치료자의 신뢰는 새로운 가치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내담자가 갖고 있다고 내담자 스스로 확신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2) 무의미성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내담자는 어려운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가치있는지 심지어는 사는 일이 가치있는지까지도 회의하게 된다. 죽음에 직면할 때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걸까, 결국 죽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일단 내가 죽으면서 내가 한 모든 것들은 잊혀질 것이 아닌가? 죽음이  확실히 주어졌다면 왜 나는 하찮은 일들로 바빠야 하는가?"와 같이 스스로 묻는다. 우리 집단 중의 한 남자는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내 자신이 마치 급히 넘겨진 책 속의 한 페이지 같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아무도 그 페이지를 힘들여 읽으려 하지 않았어요."그런 무의미성을 프랭클(1978)은 현대의 삶에 잇는 실존적 신경증이라고 보았다.

 

(3)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
  로고테라피는 시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도와주도록 고안되었다. 삶의 의미성에 도전하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표지이다. "의미에의 의지"(the will to meaning)는 개인의 기본적인 추구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여야 한다.(Frankle, 1978).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는 과제는 삶이 게속되는 한 결코 끝낼 수 없다.


  치료자의 기능은 내담자에게 그들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고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Frankle, 1978). 이 견해는 실존주의 철학은 염세적 경향을 지니지 않았으며 고난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개인이 취하는 자세에 따라 삶의 고난(삶의 비극적이며 부정적인 측면)은 성취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프랭클은 인간은 고통, 죄의식, 저망, 죽음에 직면할 수 있으며 일단 그것에 직면하면 그 절망에 도전하여 승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의미란 우리가 직접 찾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으로 그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것을 잃는다. 얄롬(1980)과 프랭클은 쾌락처럼 의미도 완곡하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참여"(engagement)의 부산물인데 그 참여란 창조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삶을 정립해 가는 것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6) 전제 5 : 삶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생존하고 유지하며 자신을 주장하기 위한 개인적 열망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인간조건의 필수적 부분으로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실존치료자들은 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을 구분하는데 그들은 불안을 성장의 잠재적 근원으로 본다. 정상적 불안은 직면한 사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다. 나아가 이런 종류의 불안은 억압되어서는 안되며 변화의 동기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보통 의식되지 않으며 개인을 활성화시켜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안이 전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 불안을 제거하는 것은 치료과제가 아니다. 불안이 없다면 삶은 영위될 수 없으며 죽음 또한 직면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정상적 불안, 실존적 불안의 구조적 형태는 우리가 점차 자유를 인식해가고 그 자유를 선택하거나 거부했을 때 생기는 결과를 인식해 가는 것 같은 인간 성장을 위한 자극제가 된다. 사실 우리가 자신을 재구성하겠다는 결정을 하면, 이때 수반되는 불안은 변화의 준비가 되었다는 지표이다 그 신호는 건설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신호의 미묘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감히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상담을 원하는 내담자의 대다수는 불안을 근절시킬 해결첵을 원한다. 환상을 만들어 불안에서 도피해 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환상을 만들어 불안에서 도피해 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확고한 안전성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삶을 구축함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선택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것은 불안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며 간헐적 불안에 과도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자신에 직면하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당황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안을 기꺼이 가지려는 사람은 개인치료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확신한다. 너무 빨리 편안해지려는 사람은 잠시의 휴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결국은 옛날 방식에 고착되어 좌절을 경험한다.


  메이(1981)에 의하면 자유와 불안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불안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 수반되는 흥분과 비슷한다. 그래서 우리는 잘 아는 영역에서 나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불안을 느낀다.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해 우리 대부분은 미지의 세계로의 도약을 회피한다. 메이는 이것을 " 우리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자유를 묶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이 의식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불안 때문에 그들의 영감을 잠가 버리기 때문에 가장 창조적인 생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표현하였다.(1981).

 

7) 전제 6 : 죽음과 무에 대한 인식
  실존주의자들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조건으로서 삶에 의미를 주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인간존재의 특성은 미래의 실재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파악하는 능력에 있다. 만약 삶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실재에 대항해 방어한다면 삶은 어리석고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우리의 과제를 완성하는 데 영원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현재의 순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에 향기와 맛과 창조성을 제공하는 근원이 된다. 죽음과 삶은 상호의존적이며 비록 육체적 죽음이 우리를 파괴한다 하더라도 죽음의 관념은 우리를 구제한다.(Yalom, 1980)


  죽음에 대한 인식은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기가 없는 삶의 유형을 보다 신뢰로운 삶으로 옮겨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Yalom,1980). 그래서 실존치료에서는 내담자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정도를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둔다. 죽음이 주는 과거와 현재의 위협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자신이 어떻게 잘 살았으며 삶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어했는지를 평가해보는 건강한 감각으로 무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두려움은 상호관련적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두팔을 벌려 삶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불안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만일 가능한 한 최대로 현재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한다면 삶의 종말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도 두려워한다. 결코 참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무로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와 직면하는 데서 도피하려고 하면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메이는 이것을 "죽음을 부정하는 데 대해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막연한 불안과 자기소외이다."라고 말하였다.(May, 1961)

 

3. 치료의 과정

1)치료목표
  치료체계의 기본목표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유가 두렵다는 것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수용하고 행동하게 돕는 것이다. 실존치료는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 할 수 없으며 그 자유는 책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실존치료는 엄격한 생활궤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자유를 막아 버리는 편협하고 충동적인 성향에 도전하도록 한다. 비록 이 과정은 개인에에게 해방감과 자발성을 주지만 새로운 자유는 불안을 야기한다. 자유는 새로운 길로 가는 모험이며 거기에는 우리를 안내할 어떤 확실성도 없다. 이런 "현기증"(dizziness)과 자유에 대한 공포는 성장하려면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May, 1981). 자신이 현재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두려움을 지닌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친근한 것에 매달려야 하는지 아니면 확실하지 않은 보다 도전적인 삶을 열기 위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한다. 삶에는 아무런 보증이 없다는 것에서 불안이 야기된다. 그래서 실존치료는 내담자가 자신은 단지 외계의 어떤 결정적인 힘의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용하고 선탱에 따른 불안을 수용하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메이에 의하면 내담자들은 내적으로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치료자)가 자유롭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자기봉사적(self-serving)인 환상을 갖고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한다. 그래서 그는 "심리치료의 목적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내담자의 '치료'에 있지 않으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삶에서의 그런 희생적 역할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자각하도옥 돕는 데 있다."(1981)고 기술하고 있다. 러셀은 이것을 "치료를 통해 사람들은 전에 손해를 입고 고통을 당했던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수용하게 된다. 치료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전에 '우연히 일어났던'( happening)것으로 간주하던 것을 자신이 스스로 '행한 것으로서'(as doing)자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다음의 편지는 나의 옛날 내담자가 쓴 것으로 그녀의 동의를 얻어 여기에 실었다. 그녀의 글은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 나가기 위해 매일매일 결심을 하면서 느꼈던 인식, 자유, 책임 그리고 불안과의 싸움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때때로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실제의 나와 내가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서로 투쟁하는 것을 느낀다. 감정은 지금까지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과 미움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새롭고 두려운 일이다.나는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러워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이 떠나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비일관성과 의존성-독립성의 싸움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가끔 정상적으로 죽었던 과거상태로 남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때 내가 완전히 살아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 한 남자가 나를 포옹하였는데 잠시동안 매우 포근하고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나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것은 나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신뢰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아마 어떤 관계에서든 항상 위험스런 요소가 수반되기 때문일 것이고 나는 것을 수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고통과 좌절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지,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가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만약 내가 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 지금같이 자아통찰을 할 수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 또는 만약 내가 마술을 써서 불안을 덜 느꼈던 정서적인 성장의 초기단계로 되돌아 간다면 그래서 거기 머무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도 상상해 본다. 그때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아름다움도 못느끼고 성취감도 없었으며 마음의 평화도 몰랐으나 그때가 더 안전한 것 같았다고 느꼈다. 그때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것 같은 곤경도 없었고 단순하고 도전이 별로 없었던 안전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만일 마술로써 되돌아 갈 능력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결코 되돌아 가지 않을 것이다. 요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껏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기 때문에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러나 아직도 때때로 이 모든 고통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2) 치료자의 기능과 역할
  실존치료자들은 원래 내담자가 새로운 이해와 선택을 하도록 돕기 위해 내담자의 주관적인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내담자의 현재 상황에 중점을 두며 과거를 회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May & Yalom,1984). 전형적으로 실존치료자들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한 내담자에게서 다른 내담자에게로 변화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 내담자를 치료과정의 다른 국면에 처하도록 하게도 한다. 한편으로는 체계적 둔감법, 자유연상, 인지 재구조화의 기법을 쓰기도 하고 다른 학파의 치료자들에게서 통찰을 끌어내기도 한다.(Fischer & Fischer, 1983).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실존치료자들은 엄격하고 상식적이며 조작적이라고 생각하며 기법을 혐오한다. 치료과정에서 기법은 치료자로하여금 내담자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도전하게 하는 치료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실존치료자들은 특히 내담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데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내담자가 책임을 수용하도록 조언한다. 가령 내담자가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하면 그들은 내담자의 말을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치하도록 권한다. 만약 내담자가 궁지에 빠져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이런 관점에서 얄롬(1980)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결정하게 한다. 그리고 내담자에게 이런 통찰을 이야기해 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내담자 스스로 곤란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의 계기는 있을 수 없다".


  실존치료자들은 소위 "제한된 실존"(restricted existence)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이런 상담자들은 자신에 대해 제한된 인식을 하며 때로는 문제의 본질도 잘 모른다. 만일 삶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면 그들은 함정에 빠진 느낌을 갖거나 무기력해 한다. 이런 경우 치료자의 주요 임무는 내담자로 하여금 제한된 실존의 현장에 직면하도록 하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돕는 것이다.말하자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점차적으로 자기직면을 하도록 거울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내담자는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의 삶을 확장시킬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요인들과 현재의 숨막히는 생활유형을 인식함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의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요인들과 현재의 숨막히는 생활유형을 인식함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는 책임을 수용하게 된다. 치료과정에서 실존치료자가 실제로 해야 하는 치료의 예로서 다시 나의 옛 내담자의 편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만약 내담자가 치료기간 중에 자기의 느낌을 표현한다면 치료자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내담자가 말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의 반응을 공유한다.


·내담자의 경험에 유사한 적절하고 타당한 경험을 드러내도록 돕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그녀의 고뇌를 표현하도록 한다.


·그녀가 결정을 회패해 온 방법들을 직면하게 하고 이런 회피에 대해 판단하도록 촉구한다.


·그녀에게 "만일 당신이 기억하는 치료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신통한 길이 있다면 지금 되돌아 가기를 원하는가?"라고 질문하여 치료 전의 당시의 생활과정을 점검하도록 격려한다.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존재의 특질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임을 함께 공유한다. 즉 그는 혼자이며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고 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해야 하며 그리고 때로 무의미하게 보이는 세계에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지금 배우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3) 치료에서의 내담자의 경험
  실존치료에서의 내담자는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의 세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격려받는다. 그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였는지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효율적인 치료는 이런 인식을 머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치료과정을 통해 이런 통찰에 기초해서 행동하도록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나아가 그들은 치료과정에서 적극적이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 죄의식, 불안을 어떻게 탐색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심리치료만 받으려는 경우도 앞의 기록에서와 같이 그 자체가 때로는 두려울 수 있다. 내담자가 안일함을 떠나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했을 때 경험하게 될 불안감을 잠작해 보자.

 

 나는 오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이 두려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는 무엇보다 제리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는 나를 변화시킬 힘을 같고 있다. 내가 그에게 그런 힘을 주었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나를 당황케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모르며 단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만 안다. 나는 이것이 슬프고 겁이 난다. 나는 나의 삶으로부터 안전한 영역을 폐기시켰으며 장차 어떻게 되어갈지 두렵다.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이 슬프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해졌고 내 속에서 새로운 나와 싸우고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사람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다르게 관계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모든 것에 불안을 느끼며 특히 나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요컨대 실존치료에서는 내담자는 자신을 개방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데 이런 경험은 때로 두렵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며 즐겁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경험이며 또한 이 모든 느낌들의 혼합이기도 한다. 내담자가 잠긴 문을 힘겹게 열 때 그는 자신을 심리적으로 묶고 있던 결정론의 사슬을 풀기 시작하게 된다. 점차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를 자각하게 되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장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치료과정을 통해 그들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내담자가 자신의 무기력을 호소해 올 때 또는 힘이 없음을 확신하려 할 때 메이(1981)는 자유를 향한 그들의 여행은 한 발을 그의 도착점에 이르는 다른 앞면에 놓고 시작할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질수록 그들은 기본적인 보폭을 취함으로써 자신이 가야 할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실존치료에서 내담자가 경험하는 또 다른 것은 당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것보다는 궁극적인 관심사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메이는 "출생, 죽음, 사랑, 불안, 죄의식 등과 같은 주요 경험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직면되고 인식되어야 할 패러독스(역설)이다. 그래서 치료에서 우리는 삶의 이런 역설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히 하는 방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언해야 한다"(1981)라고 기술하였다. 치료기간 동안의 주요 주제는 불안, 자유, 책임, 고립, 소외, 죽음 등과 그것들이 삶에 주는 의미 그리고 의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 등이다.

 

4)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관계
  실존치료자들은 내담자와의 관계에 치료의 중심을 둔다. 관계는 그 자체로 중요한데 그것이 전이를 촉진하기 때문은 아니다. 치료상황에서의 이런 인간 대 인간의 질(quality)은 긍정적 변화의 자극제가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며 내담자를 솔직하고 통합적이며 용기있는 존재로 지각해야 한다. 치료관계는 함께 하는 여행이다. 부버(1970)의 "나/당신"관계의 개념은 여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담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공감의 과정을 통해 치료자는 치료관계를 깊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내담자의 반응을 공유한다.


  피셔와 피셔(1983)에 의하면 치료관계의 핵심은 존중(respect)이다. 실존치료에서 존중이란 내담자가 그들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선택 가능한 대안을 탐색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어떻게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 왔는지 어떻게 제한된 실존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해 내담자는 그들이 가져야 할 자유를 직면하고 선택할 능력을 갖게 된다.


  치료상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죠라드(Jourard, 1971)는 내담자가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행동을 통해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는 치료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또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나와 너의 관계를 형서하도록 도와야 하며 그런 관계에서 치료자의 자발적인 자기노출은 내담자의 성장과 진실성을 키워 준다고 보았다. 그는 "조작은 역조작을 낳고 자기노출은 또 다른 자기노출을 생기게 한다."고 하였으며 치료관계는 내담자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치료자도 변화시킨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와 성장을 시도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사람은 치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역설하였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발적인 행동을 조형하도록 돕는다. 관계가 적절하면 이것은 더욱 명료해질 수 있으며 치료자의 인간됨은 내담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자극이 된다. 그는 만약 치료자가 치료기간 중에 자신을 숨기거나 또는 내담자에게서 야기된 증상과 같은 비자발적인 행동에 참여하면 내담자는 자신을 방어하고 비자발적인 행동방식을 고집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치료자는 적절한 때에 자신을 적절히 개방시킴으로써 내담자가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내담자의 떠도는 모든 느낌이나 생각을 제어하지 않고 다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끊임없이 내담자의 반응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의미하며 특히 이런 공유가 촉진적인 효과를 가져올 때 그렇다.    

           

 4. 적용 : 치료기법과 절차

   앞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실존적 접근법은 다른 접근법과 달라서 잘 정련된 기법을 갖지 않고 있다. 이 접근법은 부겐탈(Bugental, 1978, 1981)이 지적한 것처럼 정신분석의 개념과 기법을 몸에 걸친 포괄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지적이고 행동적인 접근법에서 사용하는 기법을 통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사용하는 기법들은 내담자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라는 개인적 장에 수반하는 책임을 수용하도록 돕는 도구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장의 앞부분에서 기술한 실존적 접근법의 여섯 가지 명제의 치료적 의미를 기술하고자 한다.

 

 1) 자기인식의 능력 : 상담에 주는 의미
  인식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개념화 될 수 있다. 양쪽에 많은 문이 있는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 문을 활짝 열거나 조금 열거나 또는 갇힌 채로 둘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그 중 한 문을 열었을 때 당신이 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두렵고 추한 것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러나 반대로 당신은 어쩌면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방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방문을 닫은 채로 둘 것인지 아니면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볼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인식을 제한하거나 또는 확대시키거나 하는 데 있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의 모든 상담상황에서 대립되는 욕구 사이의 투쟁을 보았다. 자기인식의 개념은 인간능력의 기본이므로 자기인식을 넓히려는 결심은 인간성장에서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개인이 개인상담이나 집단상담에서 경험하는 자기 인식의 시초가 되는 목록들이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사랑받으려고만 노력하므로 실제로는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경험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할 때 느끼는 불안감을 의존성이 주는 안전감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 속의 비일관성을 부인하려고 시도하며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감이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정의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자신이 과거의 경험과 결정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숱한 단면들을 발견하고 존재의 한 면을 억제 할 때 다른 면도 억제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만약 비참함을 억압한다면 기쁨도 닫혀 버린다. 만약 그들이 증오를 부정한다면 역시 사랑하는 능력도 부정된다. 만약 그들이 악귀를 쫓아낸다면 천사도 쫓겨난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가 과거처럼 운명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고 과거를 바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미래를 재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과 무에 대해 너무 몰두하기 때문에 삶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이기 위해 완전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에 몰두하거나 미래를 계획함에 있어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함으로 인해 현재의 삶이 실패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참된 의미에서 다른 대안들에 대한 자각, 동기의 자각, 인격형성의 요인들에 대한 자각, 개인의 목표에 대한 자각을 포함하는 자기자각의 증진이 상담의 목표이다. 그러나 나는 치료자의 임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또 그들에게 자기자각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만족하여 의식의 앙양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치료를 받으러 오거나 집단상담을 원한다면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또한 상담자의 임무는 자각을 증진시키려면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내담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자각이 늘수록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무지는 부분적인 죽음의 느낌과 더불어 만족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사람이 자신의 문을 엶에 따라 그는 완성에 대한 가능성뿐만 아니라 더 많은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2) 자유와 책임 : 상담에 주는 의미
  책임성을 작가정신(자신의 삶을 고안하는 사람)에 연결시키는 실존적 접근법이 상담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실존치료자들은 늘 내담자는 자신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내담자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의 문제를 유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책임성을 인식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는 개인적인 변화를 할 수 있는 계기를 갖지 못하게 된다(May & Yalom,1984).


  실존치료자는 각 개인이 소유한 자유와 책임을 인지시키는 데에 상담과 심리치료의 근거를 둔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어떻게 자유를 회피하는가를 발견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모험을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담자는 무능력해지고 신경증적으로 치료자에게 매달리게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선택을 회피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스스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상담자나 치료자에게 오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상실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들은 치료자가 그들에게 지시하고, 마술적인 치료를 해주기를 기대한다. 치료자의 두 가지 임무는 내담자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어떻게 실패했는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을 의뢰했는지를 자각하게 하여 자립성을 향해 한 단계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다. 내담자가 현재의 제한된 실존방식보다 충일한 실존방식을 탐색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피셔(1983)는 치료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고 당신이 그들이라면 당신은 지금의 관계에서 현재 가진 개념들을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과 관계하거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경험하는 일에 당신의 자유를 기꺼이 사용할 것인가? " 

 

3) 정체감의 추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 상담에 주는 의미
  치료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자주 자기상실감으로 고통을 받거나 그들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내부지향적인 감각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살거나 다른 사람이 고안한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승인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중에 그들은 가끔 자신이 인정도 못받고 자시수용감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스타카스(Moustakas, 1975)는 자기로부터 소외의 조건을 기술하였다. 그는 소외를 "자신의 내적 경험에 기초되는 삶보다 다른 사람에 의해 윤곽이 그려지고 결정되는 삶이 발달하는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 따라 정체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이방인이 되어간다. 이것은 때로는 "비자발적 실존"(inauhtentic existence)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팔아 버리는"(selling out)삶으로 구성된다. 비자발적 실존은 생의 업적에 대해 박수갈채를 받기 위한 지위추구 게임이다. 많은 내담자들을 이한 중요한 교훈은 그들이 이런 칭찬을 받기 위해 너무도 엄청난 대가를 치뤄왔다는 것이다. 즉 자신과의 접촉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긴밀하고 만족스런 관계를 발전시키는 의미있는 삶의 기초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고독을 인식하는 것 - 죽음이나 자유를 인식하는 것처럼 - 은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모험의 두려움 때문에 자유와 책임을 수용하는 데 망설이는 것처럼 우리들은 자신의 고독과 소외를 수용하는 것을 회피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경험(고독)의 반이 제거된다면 다른 반의 경험(친근감)도 제거될 것이다.


  치료적 여행의 일부는 내담자가 잃었던 정체감을 다시 시험해 보게 하는 것으로 특히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고안하도록 맡겨 두는 것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거나 치료관계에서 그들의 자유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 두려워질 것이다. 쉬운 결정이나 대답을 거절함으로써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답을 혼자 찾아야 하다는 현실에서 직면하게 한다.

 

4) 의미의 추구 : 상담에 주는 의미
  실존치료자는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환자나 정신장애자라기보다 제한된 실존이라는 용어로 생각하려고 한다. 제한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단지 제한된 자기자각만 갖는다.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의 대부분을 폐쇄하고, 인생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만약 이것이 삶의 전부라면 산다는 게 무얼까 하고 의심한다. 삶의 무의미성은 공허감과 텅빈 느낌, 또는 프랭클이 말한 실존적 공허로 이끈다. 때때로 자신의 삶이 공허의 늪에 빠져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목표를 갖고 삶을 창조하는 투쟁에서 물러난다. 이것이 상담에서 도전되어야 할 영역이다.


  관련되는 개념으로 실존치료자들이 실존적 죄의식이라고 부는 것이다. 이것은 불완전하다는 느낌이나 자신이 마땅히 했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생기는 조건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무시한다면 그는 실존적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죄의식은 "신경증적"인 것도 아니고 치료되어야 할 증상도 아니다. 그 대신에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학습해 가는가를 알기 위해 이것을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삶의 의미와 방향에 도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5) 삶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 상담에 주는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 때문에 전문적인 조력을 구한다. 많은 내담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거나 적어도 그들의 불안을 줄이는 어떤 처방이라도 내려주기를 기대하면서 상담소에 찾아온다. 그러나 실존적 상담자는 단지 증상을 제거하거나 불안 그 자체를 감소시키는 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내담자로 하여금 불안이 단계적으로 증진되는 것을 경험하도록 작업을 한다. 이때 제기 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즉 내담자는 불안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불안이 성장의 기능인가? 아니면 신경증적 행동에 고착하려는 기능인가? 불안은 내담자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인가? 내담자는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려는 용기를 보이는가? 등.


  불안은 개인이나 집단상담의 치료기간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좋은 소재이다. 만약 내담자가 아무런 불안도 경험하지 않는다면 변화하려는 동기도 저하될 것이다. 불안은 새로운 행동을 실험해 보려는 위험을 참고 견디게 해 주는 에너지로 변형 될 수 있다. 이라하여 실존적 치료자는 삶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어떻게 수용하며, 도와 주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배우는 것이 종속된 삶에서 자율적인 삶으로 되는 여정에 필요하다는 것을 내담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치료자와 내담자가 무능한 행동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건설하는 것은 당분간은 불안스럽겠지만 불안은 곧 사라질 것이다. 내담자가 자신가을 갖게 됨에 따라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으로 인한 불안은 차차 감소된다.

 

6) 죽음과 무에 대한 인식 : 상담에 주는 의미
  나는 죽음과 삶은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어떤 것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만약 우리 존재에 새로운 어떤 영역이 나타나려면 우리의 어떤 부분은 죽어야 한다. 과거의 신경증적인 면에서 집착하면서 동시에 좀 더 창의적인 면이 발달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그룹에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한 집단기법을 사용했는데 그 기법은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1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하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자신이 결심한 것을 완수하지 못했으며, 변화하고자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변화시킬 시회를 놓쳤다고 상상하여 말하게 하였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어떤 부분에 직면하지 않았고 미해결의 무제를 그대로 남겼으며,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상상하여 말하게 했다. 그리고 모험을 하기보다는 현재의 자기 그대로 남기를 선택했다고 상상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이 마치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였다. 이 훈련은 내담자가 자기의 시간을 진지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며, 보다 완전한 삶을 향해 마법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실존을 수용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5. 요약 및 평가

1) 요 약
  실존주의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기인식의 능력을 갖고 있다. 자기인식이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다.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또 다른 기본 특성인 실존적 불안을 야기시킨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자유에 대한 반성을 아무리 피해 보려고 하지만 우리는 자유롭다. 비록 그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는 인식은 우리를 불안으로 이끈다. 이 불안은 우리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때 가장 고조된다. 그러나 죽음은 피하지 못할 숙명이라는 사실에 직면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순간이 의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과제를 수행할 시간을 결코 영원히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우리의 과제는 의미있고 목적있는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참신한 목표를 추구하고 삶에 의미를 주는 가치를 추구할 때 고유하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선택을 해야만 하는 자유와 헌신을 통해 발달된다.


  실존치료는 인간관계에 중점을 둔다. 이것은 내담자의 성장은 순수한 관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며 여러 가지 다른 치료법에서 빌려 온 기법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내담자와 치료자의 관계의  질(quality)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치료의 목표, 인간존재의 기본 조건 그리고 내담자와 치료자가 함께 하는 여행으로서의 치료 등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치료자는 특수한 기법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접근법에서 기법을 빌려 올 수 있다.

 

2) 실존적 접근법의 공헌
  실존적 접근법은 인간에 초점을 두며 최고의 수준에서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성취시켜 가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실존적 접근법은 인간실존, 즉 자기인식과 자유에 초점을 둔다. 실존주의 학자들은 죽음을 두려운 운명적 전망이 아닌 긍정적 전망으로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에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은 불안, 죄의식, 좌절, 고독, 그리고 소외를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실존적 접근법의 중요한 기여의 하나는 치료관계에서 인간관계의 질을 강조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접근법은 심리치료를 기계적 과정으로 만듦으로써 심리치료를 비인간화시키는 기회를 줄이게 했다. 또한 나는 실존요법에 내재한 철학이 매우 흥미로움믈 알게 되었다. 나는 특히 자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과 능력을 강조한 점에 마음이 끌린다. 내 관점으로는 이런 전망은 심리치료의 실제에 개별적이고 독특한 유형을 만드는 심원한 철학적 기저를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자체가 현대인의 핵심적 갈등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적 신념은 임상가들에게 그들의 이론적 성향에 관계없이 무언가를 준다. "실존적 접근법은 치료자에게 훈련되지 못한 쓸모없는 허가증을 주는" 이론이라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얄롬은 "'실존적 접근법은 다른 접근법만큼 합리적이고 일관적이며 체계적인 것으로 가치이고 효율적인 심리치료의 틀(paradigm)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나아가 그는 실존적 접근법은 치료자에게 일련의 임상적 통계자료들을 설명하는 체계를 제공해 주고 체계과정의 체계적 전략을 구성하는 체계를 제공해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모형이 다음과 같은 이점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은 알뜰하고(극히 기본적인 가정만 설정하고 있음)접근하기 쉽다(이 가정들은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는 자료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모형이다. 그러나 얄롬은 이것을 확고한 이론적 틀(the paradigm)로 보기보다 그냥 하나의 이론적 틀(a paradigm)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유용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치료자들이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치료자들이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다. 나는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인간존재는 너무 복합적이어서 하나의 방법을 통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존적 접근법을 갖고 활동하는 학자이면서 임상가인 부겐탈(Bugental, 1978)은 이접근법이 효과가 좋은 유일한 접근법은 아니지만 유용한 접근법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유일한 접근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거나 순진하게 느껴진다. 많은 이론적 체계들은 유용하지만 인간존재는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고 알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심리치료법이 제시될 수 없다. 아니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실존적 접근법에 가장 적합한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이 치료에 가장 적합한가? 가장 좋은 경우는 인간의 성장을 향한 유용한 선택과 통로에 초점을 두는 경우이다. 아주 짧은 상담에서도 실존치료는 내담자가 개인적 책임을 가정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을 하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자각을 확대하도록 하는 일에 초점을 둔다. 발달적 위기와 싸우는 내담자에게 실존치료는 특히 유용하다(May & Yalom, 1984).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의 예로 청소년의 자아정체감확립을 위한 투쟁이 있다. 중년기의 실의와 싸우는 몸부림이 있다. 집을 더나 적용하려는 아동의 투쟁도 있고 직업과 결혼에서의 실패에 대처하려는 성인 초기의 몸부림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적 과점은 개인이나 집단상담에 적절히 적용할수 있으며 이 기본 개념은 다른 치료로부터 빌려온 기본의도는 이 기본 개념과 주제를 모든 학파의 치료기법과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통합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3)실존적 접근법의 한계와 평가
  이 접근법에 대한 중요한 평가는 이 접근법이 심리치료의 원리와 실제에서 체계적 전술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법론에서 엄격함을 결여한 점과 신비적인 언어와 개념들을 사용한 점이 비판받고 있으며, 과학적 접근법에 대한 반동에 기초한 일시적 변덕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증적인 연구에 기초한 상담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치료의 개념들이 실증적이어야 하고 정의가 조작적이어야 하며 가설은 검증될 수 있어야 하고 치료의 실제는 치료의 과정이나 실제 모두에서 연구결과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메이(1958)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의 실존주의적 운동은 보다 경험적인 실행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통계자료를 정당화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내담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드러내려고 하기보다는 감추려고 하였다. 실존적 접근법은 선입견으로 내담자를 보거나 또는 좋아하는 이미지로 만들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접근법은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전통의 입장에 선다.


  실존적 태도를 견지하는 일부 치료자들은 그들의 치료유형을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 대화적 만남(dialogic encounter), 자발성(authenicity), 그리고 세계 내의 존재(being in the world)라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용어로 기술한다. 이런 식의 명확성의 결여로 때로는 혼동이 생기고 실조치료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연구를 하기가 어렵게 된다.


  또 다른 기본적인 한계는 이 접근법의 용어의 대부분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 치료에 적용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이론가들은 상담자나 치료자를 위해 그들의 이론을 만든 것이 아니다. 철학적인 성향이 없는 초심자나 발전도상에 있는 치료자들은 실존적 개념들의 대부분이 공허하고 교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철학에 익숙한 상담자들도 때로는 이것을 치료에 적용할 때 당황해 한다. 이미 살펴온 바와 같이 이 접근법은 내담자를 먼저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기법을 적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실존적 접근법 본래의 기법이 없다는 사실은 치료자가 자신의 창조적인 치료절차를 발달시키거나 다른 학파의 기법을 빌어다 쓰도록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접근법은 인간을 사회적, 심리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기능하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나 위기에 있는 사람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되고 있다. 자유와 책임에 대해 실존주의자들의 강조는 무감각하거나 미숙할 수 있다. 또한 철학적 통찰도 어떤 내담자들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다. 따라서 실존적 접근법은 장애가 심한 사람에게는 부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라잉(Laing, 195)은 실존적 관점이 정신병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하였다. 라잉의 긍정적 결과는 실존적 성향을 지닌 치료자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잘지낼 수 있다는 것과, 내담자의 고유한 성격에 맞는 능동적이고 지시적인 중재방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6. 반성과 논의를 위한 질문들

(1) 개인적인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의 당신은 선택의 결과라고 믿는가 아니면 환경의 산물이라고 믿는가?


(2) 당신의 삶에서 결정적 전환점들을 생각해 볼 때 무엇이 현재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나타나는가?


(3) 자유를 인정하고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해 안일하게 지내기 위해 지율성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4)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각기 혼자라는 데 동의하는가?  그런 사실이 상담에 어떤 의미를 주는 가? 어떤 방법으로 혼자라는 경험을 회피하였는가?


(5) 불안의 경험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 불안은 자신이 선택해야만 한다는 생각, 혼자라는 인식,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사실의 자각, 그리고 삶에서 자신의 의미와 목적을 창조해야 한다는 자각의 결과에서 온 것은 아닌가? 자신의 삶에서 불안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6) 만일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7)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없으면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삶에 의미와 목적을 주는 것을 무엇인가?


(8) "실존적 공허"(existnetial vacuum)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때로 삶이 실체, 깊이 그리고 의미가 없음을 경험하는가? 이러 허무감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과 같으며 어떻게 거기에 대처하는가?


(9) 내담자와 치료자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실존적 관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내담자와 미지의 영역으로 치료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삶에 도전하고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는가?

 

7. 읽을 만한 보충교재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저술들은 대부분 너무 기교적이고 모호해서 상당한 철학적 배경이 없으면 읽기 어렵다. 그러나 이 깊이 있는 사상가들의 글은 이 방면에 흥미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명문들이다. 이런 명문 중 두 가지는 "도스토에프스키에서 사르트르까지의 실존주의"(Kaufmann, 1975)와 "실존주의"(Solomon, 1974)이다.


  내가 실존적 심리치료의 근원으로 추천하고 싶은 글은 "실존적 심리치료"(Yalom, 1980)이다. 이 책은 실존적 정신의학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교과서이다. 작가는 자신의 임상경험과 문헌에서 인간존재의 네 가지 관심사에 초점을 둔 역동적 치료법을 만들었다. 네 가지 관심사인 죽음, 자유, 고립 그리고 무의미성이 많은 임상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실존적 관점을 미국사회에 도입한 주요 인물의 하나는 메이(May)이다. 그의 최근의 저서 <<자유와 운명>>(1981)에서 그는 선택, 운명, 자유와 불안, 죽음과 삶의 의미, 삶의 소생, 절망과 기쁨등과 같은 인간사로부터 심리치료의 실행을 위한 의미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책이며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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