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의 핵심은 역동성 내지는 가변성이다. 행위자와 구조의 상호작용을 핵심개념으로 하는 구성주의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가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미처 보지 못했던 맹점을 반성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기존의 이론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국가라는 행위자를 응당 존재하는 외생적이고 당위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그러나 구성주의는 국가의 행위자 개념역시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고 구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행위자인 국가 역시 구조를 구성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조와 행위자를 포함한 사회적 현실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외생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신자유주의, 신현실주의 이론은 행위자에 의존하는 환원주의적인 면과, 구조적 물신화에 치우쳐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사회과학에서의 환원론의 개념은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현상을 구성하는 단위체들을 쪼개고 그들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좁게 파헤쳐나가는 방식이다. 주어진 대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 대단히 편리하지만, 최소로 쪼개진 단위와 거시적인 현상을 인과관계로 연결하기에는 비약이 뒷받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체계와 구조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이론이 이해하고 있는(월츠와 같은) 구조 또한 구성주의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국가, 구조 등을 고정적이고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거기다가 맹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의 물질적인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관념적인 부분을 놓쳤다고 평가했다.
기존 이론은 행위자의 의도를 결정하는 것은 행위자를 둘러싼 국제제도나 규칙과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행위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고 국제제도를 둘러싼 기대효과가 행위자의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전후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즉 국제제도의 기대효과가 반드시 행위자의 의도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며, 행위자의 의도가 행위의 결과와도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19세기 다극화 구조나 냉전 시기의 양극화 구조는 기존 이론가들에게 시대적으로 당연하게 부여된 여건이었다. 그래서 구조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구조의 변화 또한 당연히 설명할 수 없었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의 논쟁에서 구성주의 이론이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되면서 온갖 주목을 받은 것은 이렇듯이 각 이론이 한계를 버젓이 노출했기 때문이다.
구성주의가 강력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이나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것과 동시에 기존 이론의 한계점을 잘 극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구성주의는 합리주의적 제도주의와 제도나 구조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같은 라인에 위치해 있다. 신현실주의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면에서 가치가 추락함에 따라,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 민주적 평화론, 그리고 구성주의는 모두 거대한 신자유주의 흐름에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 하지만 구성주의가 중요시하고 있는 제도나 구조, 행위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순수한 구성주의 핵심개념으로 돌아가 보면 구성주의는 행위자와 구조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이들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한 사회적 구성과정을 중요시한다. 더 이상 국가라는 존재를 역사 속에서 고정된 것처럼 바라보고 영구불멸의 것인 양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주의는 국가가 형성되었다가 해체, 분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즉, 국가는 어떻게 해서 소련과 같이 분해 되며, 또 어떤 연유로 유럽연합과 같이 스스로의 주권을 제한하면서 다른 국가와 통합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미시적인 행위자와 거시적인 구조를 변증법적인 발전과정으로 이해하며 이들이 맺는 동적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구성주의가 갖는 강점이다. 행위자와 구조 중 어느 것에 편향되지 않고 그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겠다는 것은 기존이론이 지닌 환원주의적 사고를 탈피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구성주의는 구조주의적 물신화도 탈피하려 했다. 구조주의적 물신화에 젖어 있다면 국가간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각각의 시간적, 공간적 구조를 설정해야 한다. 환원주의와 반대로 구조에 대한 맹신은 만약 어떤 전쟁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 당시 국제정치의 구조적 특징을 찾아야 하고, 그러한 구조적 특징을 낳은 더 거대한 구조를 찾아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구성주의는 구조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구성주의의 핵심은 가변성이다. 따라서 국제체제의 무정부상태와 국가의 정체성, 이익에 대한 미리 결정되어진 규정은 오류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구성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를 통합할만한 제3의 대안적 가치가 될 수 있는가. 판단에 앞서 구성주의는 기존 이론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환원론적인 면과 구조에 대한 맹신, 구조의 물신화면을 들어 경계한 것이다. 상당부분 구성주의는 현실주의적 전제와 자유주의적 과정을 비판이론적 관점에서 수용하고 있는 포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의 논쟁이 현재의 측면을 다루는 문제해결이론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면, 구성주의는 현존하는 질서와 거리를 두고 그것의 창출과정, 변화 가능성 모색 등의 비판이론으로서 자리매김 한다. 콕스가 지적하듯이 문제해결이론이 지속하는 현재를 상정하는 것에 비해 비판이론은 지속적인 변화과정으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역사적 이론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오너프와 웬트도 구성주의에 의한 국제정치이론의 변증법적 통합의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구성주의는 일면 메타이론이라는 느낌을 제공하는 듯하다.
인간안보의 개념에서도 구성주의는 연관된다. 안보는 국가간의 관계로 파악하면 국토수호의 의미를 띄고, 국경내로 한정시키면 인권의 의미를 띈다. 구성주의는 이러한 인간안보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에도 용이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핵심개념을 다 이해하고, 좋다고 맞장구치고 난 후의 구성주의는 필자를 허무하게 한다. 이론을 뒷받침해야 할 방법론적 제시가 기존의 것과 별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기존 이론이 가지는 근대적 합리주의와 과학의 관념에 똑같이 들어가 버린 꼴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구성주의가 가지는 한계는 방법론적으로 기존 이론들에게 회귀했거나, 초기 기존 이론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지나치게 관념적인 면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성주의는 이론적으로 국가를 중시하는 환원주의적 입장으로 회귀하였고, 방법론적으로 연역적 추론이나 경험적 입증이라는 표준적인 방식에 합의함으로써 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우선 구성주의가 경계했던 구조주의와 환원주의에 대한 탈피나 극복, 통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평가다. 구성주의의 한계로 등장하는 국가중심주의는 행위자에 의존하는 환원주의와 같이 국가를 기본 행위자로 설정해버리면서 행위자의 속성 뿐 아니라 그 존재자체도 역동적으로 형성된다는 국가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핵심전제에 찬물을 끼얹는다. 적어도 구성주의에서 만큼은 국가가 기본 행위자로 상정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국제정치의 기본구성단위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신현실주의와 합리주의적 제도주의의 물질적인 면(물신화)에 반발했던 구성주의는 국제정치의 관념적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중심주의를 경계하는 행위가 관념적인 사고와 문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형상을 띄게 되었다. 물질중심주의를 배격한 관념으로 치우친 구성주의는 기존 이론에 대한 발전적 통합을 어렵게 하였다. 분명히 관념중심의 접근은 기존의 국제정치패러다임을 지배해온 물질중심의 사고방식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긍정적인 방식이었다. 구성주의의 관념에 대한 경도는 구서주의가 연구프로그램으로 자리잡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물질과 관념의 통합을 목표로 한 구성주의는 물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주의 입장을, 관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구성주의 입장을 권유하는 식의 연구주제 분업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애초의 연구영역 분할은 구성주의의 모토와 맞지 않는다. 구성주의는 비판이론으로서 기존 이론과의 변증법적 전개 가능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큰 문제점은 구성주의가 구조주의 속성을 탈피했다고 보지 않는 점이다. 이것은 구조와 행위자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한 구성주의가 구조중심으로 분석초점을 맞추고 다른 하나(행위자)는 부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결국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는 행위와 행위자의 조건(행위자의 의도와 일치시킴)을 중심으로 국제정치에 접근했다. 구성주의는 규범적, 문화적인 구조중심의 접근을 시도로 국가들의 행위가 보다 거시적인 관념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여기서  ‘관념적’ 인 이라는 용어를  ‘물질적’인 이라는 용어로 바꾸면 구조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구조의 한 요소로서 규범이 행위자의 이해관계와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주력하는 것은 구조주의의 핵심인데, 구성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규범을 행위자와 구조의 상호구성 과정 속에서 보여주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관념적 구조결정론자라는 비판도 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중심적인 구성주의에게는 제도적, 구조적 변화기에는 설명력을 가지지만, 안정기에는 일상적 상황에서 합리주의가 적실성 있다는 분석도 가해진다.
앞서 국가주의가 환원주의 속성을 띤다면 구성주의는 구조중심주의를 포함하여 기존 이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공유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초기 구성주의는 신자유주의가 놓치고 있던 행위자의 내생적 의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불어 구조에도 가변성을 불어넣음으로써 국제정치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했다. 하지만 이 둘(행위자와 구조)의 상호작용을 규명해내는 과정에서 설명력 있는 하부구조를 제시하지 못했고, 둘 중 어느 하나로 치우치는 잘못을 노출했다. 따라서 제3논쟁의 선봉인 구성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이론으로 보기 어렵다.
구성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기존 이론과의 보완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국제정치 패러다임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즉 역할분담식이 아니라 행위자의 물적인 측면도 구성주의에서 중시하고, 그런 행위자와 규범, 구조와의 상호관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미시적인 행위자 중심의 중간 범위 분석을 하면서 물질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도 구성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국가나 구조를 기계처럼 여기고 단순한 정적요소에만 치중했던 지난 이론들의 한계는 구성주의가 국가중심주의, 관념중심주의, 구조중심주의를 극복할 때 보완될 수 있다. 국가와 더불어 중간 분석단위들도 포함시켜 구성주의를 이해함으로써 국가에 맞춰진 초점을 넓혀야 한다.
국제정치의 판은 계속해서 현실에 적합한 국제정치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된 이론이나,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이론은 그 존재자체로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구성주의는 이러한 요구에 부흥하여 등장한 메타이론일지 모른다. 그만큼 그 방법론이나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구성주의에 대한 한계분석은 어쩌면 아직 폐기처분하기에 이른 성급한 조기진단일 수도 있다. 그만큼 구성주의는 국제정치패러다임에서 버리기 아까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한번 구성주의에 의해 넓어진 시각은 그에 대한 빚갚음을 위해 구성주의를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와 신현실주의의 이론과 함께 보완적으로 기능하도록 기대해볼 수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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