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엄금’ 가톨릭 교리 때문에 배타고 공해상서 시술

대한민국에서 산부인과 하면 ‘낙태’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일단 국민의 피임의식이 미약하다는 점도 문제이겠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이쯤에서 낙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좀 해봐야 겠는데 언뜻 생각하기에는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이 낙태 자체가 불법으로 돼 있다. 프랑스의 예를 들자면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15세 딸아이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내놓은 불법 의료시술을 하든가 아니면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의 산부인과로 달려가야 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이 알선업자에게 영국 의사들은 정기적으로 커미션을 제공한다).

뭔가 좀 불합리하지 않은가. 생명경시 풍조의 만연은 분명 인류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원치 않은 성폭행에 의한 임신에 대해서는 낙태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합리적(?) 판단에 대해서도 가톨릭의 교리는 절대 엄금을 명하게 된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여성이 자구책으로 내세운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낙태 병원선’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여성 시민단체인 ‘Women on waves’(파도 위의 여성들)가 내놓은 아이디어인데(네덜란드는 원칙적으로 임신 45일까지만 낙태가 가능하다) 병원선을 하나 만들어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을 승선시킨 다음 이 배를 몰고 공해상으로 나가 그곳에서 낙태를 한다면 나라의 법도 어기지 않고 여성도 원치 않은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본디엡호’였다.

이 본디엡호는 전세계에 낙태가 금지돼 있는 국가를 찾아가 원치 않은 임신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여성을 승선시켜 사후피임약이나 낙태시술을 해주며 그 맹위를 떨치게 된다. 이런 본디엡호의 명성이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되자 낙태금지를 주장하는 가톨릭 국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 본디엡호의 영해 접근을 차단하기에 이른다. 한때 포르투갈 영해에 접근한 본디엡호가 포르투갈 해군의 위협에 공해상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포르투갈-네덜란드간 외교분쟁까지 일어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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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엡호의 활동 모습. '파도 위 여성들'(Woman on waves) 홈페이지 캡쳐 사진. 
카톨릭이 국교인 아르헨티나 앞바다에 도착할 예정인 배 한 척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논란에 휩싸였다.

본디엡호는 네덜란드 '파도(바다) 위 여성들'(Women on waves)이란 단체가 운행하는 배. '파도 위 여성(www.womenonwaves.org)'은 비영리 재단으로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 인권단체의 초청에 따라 해당 국가의 공해로 가서 낙태 수술을 해주고 약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 성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네덜란드 법상 임신 후 45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이 엉터리 낙태 수술로 6분에 한명씩 고통을 받으면서 죽음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단체는 "낙태를 불법으로 정해 놓은 나라의 경우, 청소년 피해자들이 늘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와 전문의의 상담을 받지 못한채 시설과 의료진이 열악한 곳에서 낙태 시술을 받음으로써 세균 감염으로 파리처럼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르헨티나는 카톨릭 국가로 종교적으로나 법률적으로도 낙태는 무조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5만~50만건에 달하는 불법 낙태가 시행됐다. 지난 8월 아르헨티나 '국가와 사회' 연구센터는 2002~2003년 사이에 발생한 아르헨티나 산모 사망자의 30%가 불법 낙태로 인한 것이란 연구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본디엡호의 아르헨티나 행은 이 나라 여성 하원의원의 초청으로 이뤄졌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거센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파들은 이 배를 '죽음의 배'라고 부르며 해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끼르츠네르 대통령도 불편한 심기를 비춘 바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현행법상 여성이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해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90년대 초 성폭행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유태인 여자의 경우에도 대법원은 "뱃속 아기도 태어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산모가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정신지체아가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했을 경우에 한정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파도 위 여성들'은 이처럼 불법 낙태로 고생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역시 카톨릭 국가인 포르투칼을 찾았다가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카톨릭 국가이며 낙태가 불법인 포르투갈은 해군 군함을 동원해 해안에 접근하려던 본디엡호를 쫓아내, 이 사건이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두나라 사이에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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