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주연 배우 캐서린 햅번이 한 말이다. 그녀가 남긴 사랑의 명언에서 포착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은 바로 ‘운명’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어떤 사람들은 운명적 사랑을 철이 없거나 현실 감각이 떨어진 사고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운명적, 낭만적 사랑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따라서 실체가 없는 현상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사랑은 운명일까,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즉흥적인 모습일까. 최근 사랑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뇌신경학, 정신의학, 사회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은 없다. 단지 호르몬에 의한 기분의 유희만 있을 뿐이다.
 
사랑 때문에 웃고 울고, 때로는 사랑의 아픔으로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고결한 그 무엇이 결국 호르몬의 피지배자(?)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달리 말하면, 호르몬의 제어를 통해 사랑의 감정 또한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호르몬의 통제를 받는 인간의 나약한 감정이지만, 사랑은 상당 부분 ‘운명적인’ 성격이 강하다. 과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사랑의 운명적 특성을 증명했다는 사실은,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희소식일 터이다. 과연 사랑은 무엇인가. 과연 내 몸 속의 어떤 호르몬이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나의 운명적 그녀는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 

-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자, 생면부지의 그 혹은 그녀에게 용기를 내 건네고 싶은 말일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외모를 보지 않고 사랑에 빠지긴 힘들다. 물론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에서처럼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에 빠지기 위해선 대면식이 필요하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는 영국 시인 B.W. 예이츠의 명언처럼 사랑의 시작은 시각이다.
 
우스개 얘기로 남자는 시각에 약하고, 여자는 분위기(청각?)에 약하다는 말이 있다. 성행위의 남녀간 특징을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이는 사랑의 첫 시작에 있어 남성의 시각 반응이 여성보다 훨씬 즉각적이란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남자는 잠시 스쳐가는 이성에게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호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고 억지스럽게 과장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는 순간 남자의 몸에선 심상치 않은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눈으로 들어온 이성의 모습은 시신경을 통해 뇌에 도달한다. 순간 뇌에서는 1000억개 이상의 신경세포에 불이 켜지고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흥분호르몬의 일종으로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키고, 호흡을 빨라지게 한다. 이 과정은 채 1초가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누군가에 첫 눈에 반했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턱 막히고, 뺨이 붉어지고, 손에 땀이 차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체 반응 때문이다.

 - 사랑은 마약과 같다.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게 된다. 식욕을 잃거나 밤잠을 설치며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하는 것이다. 사랑을 한번쯤 해본 사람은 모두 겪어봤음 직한 일일 것이다. 이전까지 내 삶은 내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거리의 나무와 꽃들이 모두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멀쩡한 사람을 약간 맛이 간듯하게 만드는 이러한 증상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막 시작한 사람들의 체내에는 모노아민(1개의 아미노기를 가진 아민화합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생긴다.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이 대표적인데, 이 물질들이 바로 사랑의 열병에 걸리게 만드는 바이러스이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해 사람들을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로 이끈다. 미 플로리다 주립대학 연구팀은 마약 중독자를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과학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하였다. 즉 만족감, 즐거움, 중독의 특성을 지니는 도파민의 작용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한없이 행복하고, 그 기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마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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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은 환각 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로, 사람을 순간적으로 미치게(insane) 만드는 작용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들거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살행위를 벌이는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용감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바로 세토로닌의 작용 때문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앞서 설명했다시피 심박수를 증가시키고 땀을 내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백주 대낮 대로변에서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서슴없이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가히 그들의 용기와 기백이 하늘을 찌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감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미상핵이라는 본능을 담당하는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지난해 KBS에서 방영되었던 감성다큐멘터리 ‘사랑’ 제1편에서 사귄지 100일 안팎의 연인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피실험자에게 애인의 사진과 친구 사이인 이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공명장치로 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MRI로 찍은 두 사진을 비교했을 때 놀라운 차이점을 발견하였는데, 자기 연인의 사진을 봤을 때 ‘미상핵’이라는 대뇌 아래 위치한 뇌가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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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뇌는 6500만년 전 인류가 포유류로 진화되기 이전에 발달한 원시적인 뇌로서 인간의 본능을 주관하고 있다. 즉,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인류가 아직 동물적 본성이 지배적일 때 사용되던 미상핵을 애용함으로써, 이성적 판단은 잠시 뒷주머니에 접어두고 행복한 본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도파민은 바로 이 미상핵의 작용으로 분비된다.
 
- 지속하기 힘든 사랑

하지만 동지섣달 팥죽이 식어버리듯 사랑도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열정적으로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던 연인들은 일반적으로 300일을 기점으로 사랑의 불씨는 작아짐을 느끼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애착(attachment)’의 단계라 부른다. 잦은 데이트와 전화통화, 스킨십, 섹스 등 열정적 사랑의 단계에서 지배적이었던 모습들은 ‘애착’의 단계에서 그 빈도가 매우 낮아진다. 하지만 달력에 표시된 데이트와 섹스의 수치로 사랑의 크기를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열정과 애착의 단계에서 분명히 다른 감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애착의 단계에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지,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정감인 것이다.
 
열정적 사랑이 식어버리는 생물학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평생 열정적 사랑을 하게 되면, 과도한 성생활로 인해 탈진해 죽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체 대사면에서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또한 인간은 먹고 살기위해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며, 종족번식을 위해 아이도 키워야 한다. 하지만 공부, 돈, 자식은 뒷전이고 날마다 데이트, 섹스, 데이트, 섹스를 반복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된다. 그만큼 사랑은 매우 강력하다.
 
애착은 연인 사이에서 오래 지속되는 책임감 같은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남녀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결속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시기에 남녀의 신경체계에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분비된다. 흔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이 호르몬은 남녀가 사회적 역할(어른)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해준다.
 
시상하부 내분비선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젖을 만들게 한다. 젖을 통해 어머니와 자식의 유대감이 형성되고, 이는 어머니에게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옥시토신은 또한 남녀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 분배돼 서로간의 친밀감을 강하게 형성시켜 준다. 즉 섹스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부부의 결속력은 더욱 깊어져 안정한 가정을 형성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남녀는 연애하고 결혼하고,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 이렇게 애착의 단계가 오래토록 지속되는 건 바소프레신과 그 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V1a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소프레신은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수컷이 암컷에게 애정을 쏟으며 새끼들을 헌식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미국 에모리대 사회신경생물학자인 래리 영 교수와 동료들은 수컷 프레리 들쥐(prairie vole)와 목초지 들쥐(meadow vole)를 대상으로 바소프레신 역할에 대해 실험하였다.
 
보통 프레리 들쥐는 평생 암컷 한 마리와 사랑을 나누고, 목초지 들쥐는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에 프레리 들쥐와 목초지 들쥐를 비교 관찰한 연구팀은 목초지 들쥐 뇌에 V1a 수용체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V1a 수용체는 바소프레신 호르몬을 인식하는 단백질로 뇌에 충분한 양이 있을 경우 일부일처제를 선호하지만, 부족할 경우 한 암컷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에 연구팀은 목초지 들쥐의 뇌에 V1a 수용체 유전자를 집어넣어 농도를 높여주었다. 결과는 수컷 목초지 들쥐의 암컷 편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수용체를 활성화 시킨 수컷 목초지 들쥐는 첫 상대인 암컷에 헌신적일 뿐, 다른 암컷과 붙여줘도 전혀 짝짓기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 교수는 “짝짓기를 할 때 분비된 바소프레신이 전뇌의 V1a 수용체와 작용, 신경계의 ‘보상시스템’이 작동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수컷은 이 행복감을 처음 짝짓기한 암컷과 연관시킴으로써 상대에게 충실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영향은 애착의 단계를 지속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인 특성에서 ‘열정’과 ‘애착’의 단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열정적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함이다. 이는 혼신이 들어간 섹스를 통해 건강한, 좋은 유전자를 지닌 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탄생한 후에는 애착의 단계로 들어, 2세 양육을 위해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게 되고 건강한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랑의 모습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 사랑은 급속도로 진전되지만, 곧 그 크기는 점차 감소한다. 사랑의 크기가 약 50% 감소했을 때가 사귄지 1년이 되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연인들은 사랑의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 커플은 보통 900일에서 사랑을 끝맺음 한다. 반면 슬기롭게 상황을 극복한 연인은 사랑을 다시 불태우게 되는데, 그 크기는 첫 만남처럼 대단하지는 않다. 900일 이상 사랑을 지속시키는 연인들은 사랑이 희미해짐을 느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커플은 파동 곡선을 그리며 사랑을 지속시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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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스하면 너무 좋다

인간의 입술에는 수십만 개의 신경세포가 밀집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입술이 상당히 예민한 성감대라는 뜻이며, 섹스는 입술의 세포 활성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열정적인 프렌치 키스는 34개의 얼굴 근육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온몸의 말초신경들을 자극하고 극도의 흥분상태에 이르게 된다.
 
노르에피네프린 호르몬의 작용으로 혈액의 흐름이 높아지면서, 남녀 생식기에 혈액이 집중돼 자연스럽게 섹스로 연결되게 된다. 남자의 생식기 경우 60배 이상의 혈액이 집중되는데, 이는 남성이 섹스에 있어 참을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피부 또한 무척 예민해진다. 즉 섹스 할 때 온몸을 통해 그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섹스의 목적 혹은 이유를 오르가즘의 유희와 종족 번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섹스는 우리에게 건강을 제공해 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섹스의 순기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섹스는 임신합병증을 줄여준다.
섹스를 하면 피부가 좋아진다.
섹스를 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섹스는 남성 전립선암의 위험을 줄여준다.
사정을 자주하면 암이 예방된다.
섹스를 하면 살이 빠진다.
섹스를 하면 장수한다.
 
섹스를 하면 건강해지는 이유는 면역글로불린A(lgA)라는 면역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lgA는 외부 세균을 1차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해야 가장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섹스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lgA가 많이 분비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주 1~2회의 섹스가 가장 높은 수치의 lgA를 생산하였다. 너무 잦은 섹스나 혹은 너무 뜸한 섹스는 lgA 수치가 낮게 나왔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선인들의 진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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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섹스를 하게 되면 노화방지 호르몬(DHEA) 분비도 많아진다. 주 1회 이상 섹스를 하는 부부의 호르몬 분비량은 6.6ng/ml으로 월 1회 미만 섹스하는 부부의 분비량에 비해 약 33% 높게 나왔다. 섹스를 하면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다. 주 1회 이상 섹스하는 부부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13으로 정상치가 나왔으나, 월 1회 미만의 부부의 경우 3으로 매우 낮게 나왔다. 

- 사실, 섹스는 머리로 한다

의학자 비버리 위플 박사는 오르가즘을 느낄 때 뇌를 스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의 결과에 따르면 오르가즘에 다다랐을 때 뇌의 기저핵, 시상하부, 대상피질이 활성화되었다. 이들 뇌는 즐거움과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 안에서 엔돌핀 같은 특정 신경 펩티드 물질이 생성되며, 뇌하수체후엽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돼 뇌에 쾌감을 가져다준다. 즉 섹스의 쾌감이 성기의 접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에 의한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 사랑은 운명이다?

누구와 사랑을 할 것인가.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이용해 파트너를 선택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인간은 파트너를 선택할 때 가장 최적의 유전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과 나의 유전자가 결합해 보다 업그레이드된 유전자를 형성하고, 그 유전자를 후손 대대로 물려주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파트너를 결정한다. 그리고 파트너 선택의 판단 기준은 페로몬과 외적 모습이다.
 
인류의 페로몬은 과학자들에게 있어 큰 토픽 중 하나이다. 무취의 페로몬은 콧속의 감각 조직에 의해 감지되는데, 일부 과학자들은 이것이 최상의 파트너를 고르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페로몬은 쥐, 다람쥐 같은 설치동물 포유류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호르몬이다. 이들 동물은 다른 동물의 소변 냄새를 콧속 VNO(vomeronasal organ)라는 기관을 통해 인식, 성별과 유연(類緣) 관계를 구분한다. 쥐들의 소변에는 그들의 면역체계에 따라 각기 다른 페로몬을 방출한다.
 
쥐들이 파트너를 결정할 때 자신이 보유한 면역 시스템과 비슷한 파트너는 피하게 된다. 왜냐하면 좀 더 다양한 면역 유전자를 새끼에게 전달해 수많은 감염으로부터 이겨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경우 페로몬은 땀으로 방출된다. 1985년에 콜로라도 대학의 연구원들은 인간에게도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조직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한편 1995년 스위스의 베른 대학교 Claus Wedekind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남성들의 세탁하지 않은 티셔츠의 냄새를 맡게 한 뒤 가장 맘에 드는 냄새를 선택하게 하였다.
 
선택된 남성과 선택한 여성의 면역 시스템을 분석해 본 결과 대부분 여성들이 자신과 다른 면역 체계를 지닌 남성을 고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쥐들이 짝짓기 대상을 고르는 방법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질병 감염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손을 생성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카고 대학의 Martha Mcclintock 박사는 다른 연구결과를 내렸다. 그는 여성이 그녀의 아버지의 땀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갖는 남성을 선호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남성을 선택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이유는 그녀 자신을 통해 이미 자기 아버지의 유전자와 면역체계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파트너를 선택하는데 있어 여성은 아버지를, 남성은 어머니를 닮은 사람을 선택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또 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 대학의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럿은 남녀가 어떤 얼굴에 끌리는지 컴퓨터 모핑 실험을 하였다. 결과는 실험에 참여한 남녀가 대부분 자신을 다른 성으로 모핑한 얼굴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모두 닮는다.
 
즉 남성은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여성은 아버지를 닮은 남성을 선호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파트너 선택에 있어 외적 모습 또한 중요한 인자이다. 미 뉴멕시코대 심리학자 스티븐 갠지스테드와 생물학자 랜디 쏜힐은 발, 귀, 가운데 손가락, 목, 손목 등의 폭과 길이를 측정해 전체적인 신체 대칭성 지수를 구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르게 했다. 그 결과 외모가 대칭인 사람일수록 더 매력적이라 느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외모의 대칭성이 양질의 유전자를 대변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은 여성의 특정한 체형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 텍사스대 심리학자 테벤드라싱 교수 연구팀은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이상적인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이 0.7 정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비율은 신체 구조적으로 여성 건강한 생식능력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비슷한 연구가 폴란드에서도 진행되었는데, 24~37세 폴란드 여성 119명의 타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가 평균 26% 높았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을수록 임신 성공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사랑을 말함에 있어 흔히 ‘조건이 무슨 소용이냐, 사랑만 있으면 그만이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에 이미 많은 조건들이 연계되어 있는 것은 사랑 예찬론자들에게 매우 우울한 사실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인간은 유전자, 페로몬, 면역체계, 신체 대칭성 등 많은 조건들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한다.
 
그 치밀한 무의식의 검증 뒤, ‘이 사람이다’라는 결정이 의식의 영역으로 번쩍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결정(혹은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운명이라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운명과 조건은 언어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영역에 존재하지만, 그 조건이라는 확률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감히 운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성격 좋고, 돈이 많다고 하여도 생물학적인 검증을 만족하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대자연의 섭리와 같은 무의식 메커니즘을 통한 파트너 선택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저자>KAIST 윤범섭

<참고문헌>
⊙ 남성의 바람기 유전자 조작 통한 치유길 열렸다. 주간조선, 2004-8-20
⊙ 드라마 속 사랑 과학으로 다시보기, 과학동아, 2004-6
⊙ KBS 감성과학다큐멘터리 ‘사랑’ - 1편[900일간의 폭풍 - 사랑하면 이뻐진다], 2편[SEX 37.2℃ - 사랑하면 건강해진다.]
⊙ BBC Science and Nature - The Science of Love
 

 <검수위원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단백질 의학센터 박성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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