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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범죄의 동기가 되고 범죄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희랍신화 플라톤의 ‘공화국’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는 처벌 받지 않고 불의를 행할 수 있는 자유의 은밀한 비유로 쓰인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소아시아 서부지방에 번성했던 왕국 '리디아(Lydia)는  한때 그리스 도시를 정복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린 대단한 문명 국가였으며 546년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한 국가다.

 리디아는 B.C. 7세기에 인류 최초로 화폐를 주조했다. 화폐 주조의 주인공은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로 유명한 기게스 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리디아는 화폐 주조의 기원이기도 했지만 ‘참주’라는 말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기게스가 최초의 참주였다. 한자어 ‘참주(僭主)’는 ‘진정하지 않은 왕’, 즉 정통성 없는 왕을 뜻한다.
서양에서도 ‘절대적 권력자’나 ‘폭군’이란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리디아어 ‘참주(Tyrannos)’는 신성권력과 대비되는 세속권력의 통치자를 가치중립적으로 가리켰다.

기게스 이야기는 여러 변용이 있지만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리디아 왕 칸다울레스는 왕비가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여기고 늘 측근인 기게스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직접 왕비의 알몸을 엿보라고 기게스에게 명령한다.

기게스는 겁이 나서 “여자는 속옷과 함께 부끄러움을 벗어 던지는 존재”라고 사양하지만 왕의 거듭된 강권에 못 이겨 문 뒤에 숨어서 왕비의 알몸을 엿본다. 이를 알아차린 왕비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한다. 기게스는 왕비의 뜻대로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다(헤로도투스의 <역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왕의 양치기인 기게스의 조상은 큰 홍수와 지진이 끝난 후 땅이 갈라진 틈에서 속이 빈 청동 말을 발견, 그 속에 누워 있는 시체의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어 가졌다. 이 반지는 손가락에 끼고 안쪽으로 돌리면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밖으로 돌리면 모습이 보이게 하는 요술반지였다. 반지의 비밀에 눈뜬 기게스는 왕의 사자가 되어 왕비의 처소에 드나들다가 정을 통하게 되고, 왕을 시해한 후 왕권을 잡았다.

문제는 그 반지에 매료된 기게스가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게 대단히 신비롭고 훌륭한 무기, 그리고 무한한 권력과 부, 심지어 아름다운 여자를 자유로이 탐할 수 있는 신비한 보석을 포기할 수 없다. 기게스의 반지는 소유자에게 양심과 정의의 의무를 면제해 준다. 기게스가 그 신비한 보석에 취했듯이 각종 문명의 이점에 취한 인간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반지의 위력이 통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기게스의 반지와 같은 신통력을 가진 부당한 제도 아래에서 정의는 필요 밖에 있으면 의인은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든 금력과 권력으로 기게스의 반지를 얻으면 그만이다.


참주(僭主) 와 관련하여 두 이야기는 쿠데타나 하극상을 통해 전통적 신성권력이 새로운 세속권력으로 바뀐 역사적 사실을 시사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조도 흥미롭다. 세속권력의 창시자인 기게스는 늘 모습(실상)을 감추려고 했다. 칸다울레스가 상징하는 전통적 권력은 왕비의 알몸까지 보여주려 했지만, 기게스는 문 뒤에 숨거나 반지의 조화 속에 몸을 감추었다. 금반지의 다른 이름인 주조화폐도 자신의 모습(허상)을 새김으로써 참모습을 감추는 수단이다.

왜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 권력일수록 대중과 멀어지고, 권력자가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할수록 권력자는 대중에게 허상만 전하는지를 일깨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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