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동일
 
어떠한 급성 질환이나 설명 가능한 질환의 확실한 증후가 없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골반통을 말하는 만성 골반통(chronic pelvic pain, CPP)은 부인과 임상에서 흔히 보는 임상증상이지만 그 원인과 치료에 있어서는 명확하지 못한 면이 많다. 전형적인 만성 골반통은 주로 20-40세의 생식적으로 왕성한 시기의 기혼 경산부 여성에서 잘 나타나며, 18세에서 50세 사이의 여성 중 15% 정도의 유병률이 보고되고 있다.  
 
  만성 골반통은 부인과계통의 기관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비뇨기계, 위장관계, 근골격계 등 여러 장기의 원인에 의하여 발생되고 여기에 정신적인 원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반적인 임상적 접근으로는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만성 골반통은 대개 만성 통증증후군(chronic pain syndrome)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적절한 치료에 대한 불완전한 반응,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적응 곤란, 우울증상, 병리학적 과정에 근거하여 예상된 것보다 훨씬 더한 통증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증후의 난치성과 복잡성으로 인해 임상과정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료인으로 하여금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만성 골반통 환자와 심도 있는 병력청취를 진행할 경우 많은 증례에서 성폭행과 관련된 과거력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데, 만성 골반통은 성폭행후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한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성폭행(Sexual assault)은 다양한 심리적, 신체적, 성적 및 사회적 후유증을 야기하여 그  임상적 중요성이 크다. 아동기의 성적 학대와 성인기의 강간 경험은 대조군에 비해 정신과적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더 높고 약물에 대한 의존성도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 피해 현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날로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이 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사려 깊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황이라 할 수 있으며, 성폭행에 의한 제반 후유증에 대한 임상적 대처에 대해 한방부인과 영역에서 깊이 연구된 것을 찾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7).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한방부인과학계의 관심이 요구된다. 더욱이 부인과 외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성 골반통 환자 중에는 지속적인 통증 호소 근저에 성폭행에 의한 심리적 외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성폭행후의 PTSD로 접근하는 것이 임상적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치료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므로 관련 내용을 고찰하여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만성 골반통 환자들의 지속적인 고통 호소에는 관련된 신체적 병변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이와 함께 그 근저에는 어떠한 억압된 정신적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성폭행 경험은 그러한 정신적 문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성폭행은 개인적으로 중대한 외상성 사건이 되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하여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성적, 사회적 활동에 커다란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또 성폭행의 경험은 만성 골반통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예측인자로 볼 수 있으므로 만성 골반통 환자의 임상과정에는 반드시 적절한 의사-환자 관계의 수립을 통해 이를 확인하거나 배제할 필요가 있다. 성폭행을 경험한 환자의 임상증상이 PTSD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면 임상과정에서 손상된 자아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와 강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며, 일반건강과 사회활동 및 성생활 등 환자 전반에 대한 통합적 조절과 치료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서 서양의학의 임상 접근 방식을 참고하면서 소복통(小腹痛), 요통(腰痛), 심계(心悸), 정충(怔忡), 울증(鬱證) 등과 같은 관련 분야의 치료법을 준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접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성폭행과 관련된 PTSD로 인한 만성 골반통 환자들에 대한 한의사의 임상적 접근이 매번 용이하고 성공적일 것이라는 확신은 아직 저자들에게도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게다가 현재 이와 관련된 한의학계의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책임을 한의사에게 요구하고 있고,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성폭행과 관련된 문제를 안아 가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 전인적 접근과 개체 중심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학문적 특성, 한의사의 비교적 높은 환자 1인당 투입 진료시간 등의 진료여건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의료인 개개인의 선한 동기 등으로 인해 저자들은 이 분야에 대한 한의학적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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